- 운암김성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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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군혜 여사
두군혜(두쥔훼이)
그리고 국적을 초월해 일제 침략을 타도하려는 한·중 연합 항일투쟁의 모범적인 사례로 평가받고 있으며, 지난 2016년 제 71주기 광복절에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 받았다.
- 생몰년도
- 1904년(광동성 광저우시) ~ 1981년
- 필명
- 호 란
- 주요 공적
-
중국 항일독립운동가, 여성엘리트운동을 이끈 혁명가
1943.2 중국 중경 대한민국임시정부 외무부 요원
1945.5 한국구제총회 이사
2016.8 건국훈장 '애족장' 포상
- 가족
-
남편 김성숙: 독립운동가
첫째 두감: 전 광동성 교향악단 지휘자
둘째 두건: 북경대 중앙미술학원 유화학부 부학장
셋째 두련: 국가발전개혁위원회 정보센터 고문, 「태자당」 주축
차남 두 건
독립유공자 운암 김성숙 선생과 두군혜 여사의 차남
중국 북경 중앙 미술 대학원 당 위원회 부위원장
손자 두닝우 부부
- 손자 두닝우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 독립유공자 운암 김성숙선생과 두군혜여사의 손자로 일류대학으로 알려진 뉴욕 줄리어드 음악원을 졸업하고, 줄리어드 음악원에서 교수를 역임했으며 다수의 국제음악대회에서 수상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 중국 등 전세계에 널리 알려져 그 자체만으로도 한민족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현재는 중국 내 유명 음악학원 교수로 재직중이며, 음악 작곡 및 항일독립운동 관련 연주회 추진 등의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는 조부모의 항일독립운동정신과 한국인의 피를 함께 지니고 태어남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항일독립운동가들의 선양 사업과 한·중 문화교류에 앞장서고 있다. 또한 2018년 KBS 해외동포상에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 손자 며느리 Helen Sim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 독립유공자 운암 김성숙선생과 두군혜여사의 손자며느리이다. 두닝우와 같이 일류대학으로 알려진 뉴욕 줄리어드 음악원을 졸업하고 교수를 역임했으며, 이탈리아 Senigallia대회에서 1등, 이그리거 더블피아노와 포핸드 연주 1위를 수상하는 등 다수의 국제음악대회에서 수상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이다.
동지 정율성
- 김성숙 두군혜 부부의 친구(작곡가)
- 항일구국운동이 한창이던 1936년 남경에서 오월문예사에 가담하여 활동하는 한편, 상해에서 운암 김성숙·박건웅 등이 건립한 조선민족해방동맹에 가담하였다. 남경(南京)에서는 운암 김성숙과 두군혜 부부의 지원을 받으며 중일전쟁 발발 후 연안(延安)을 소개받아 이동하는 결심을 하게 된다. 연안에서 섬북공학(陝北公學)에 다니고, 1938년 5월부터는 노신예술학원 음악학부에서 수학하였다. 그후 항일군정대학 정치부 선전과에서 활동했으며, 1939년 1월 중국공산당에 입당하였다. 그 해 12월부터 노신예술학원 음악학부에 배치되어 음악을 가르쳤다.
두군혜 여사 연보
기간 | 주요활동 |
---|---|
1924 |
중국 광동 광주 중산 대학에 입학 |
1926 |
6.23사건 참사 1주기 추모식 참석 |
1928 |
일본 유학을 하다 가을에 상해로 감 8월 김성숙선생과 결혼하여 상해에 정착,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여 상해에서 비밀 투쟁 |
1929 |
본격적으로 독립투쟁에 참여 |
1930 |
좌익 작가 연맹에 가입 |
1931 |
부녀자 문제를 마르크스 사상에 기초를 두고 연구하였고 2차 국공합작으로 항일전쟁에 참가 남편 김성숙과<사회 과학사전>과 <부녀자 문제 강의>를 출판 |
1934 |
심자구가 만드는 상해의《신보》의《부녀원지》에 진보적인 문장을 써서, 어두운 시기에 병폐를 폭로하여 부녀자의 권익을 촉구 |
1935 |
「상해문화계구국운동선언」을 발표 상해여성구국회에 가입 중국 여성계의 항일구국운동에 참여하고, 전국 각계 구국 연합회 이사를 역임 |
1936 |
<부녀자 문제 강의>를 완성하여 상해에 있는 신지식 서점에서 출판 중국 부녀자 운동 이론 연구의 선두자로 이름을 알림 |
1938 |
우한에서 조직을 열고 어린이 보육회 상무 이사를 역임했으며, 제7보육원 설립 원장으로 역임 |
1942 |
10월 중국 중경에서 설립된 한중문화협회 발기인으로 참여 |
1943 |
2월 3일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회의에서 외무부 부원으로 선임 4월 2일 외무부 과원으로 임명 9월 28일까지 외무부 정보과 과원으로 활동 |
1944 |
충칭에서 '직업 여성'을 출판하였고 편집장을 역임 중국 부녀자 친목회의 상무이사를 담당 부녀계와 문화계의 민주 운동에 전력 |
1945 |
5월부터 안정근이 회장으로 있던 한국구제총회의 이사로 활동 7월 『독립』에 한중 연합을 통해 한국의 독립운동을 지지해야 한다는 글을 게재하는 등 한국독립운동을 지원 |
1949 |
2월 북경으로 비밀리에 들어가 전국 부녀자 대표대회에 참석 9월 첫번째 중국 인민 정치 자문회의에 참석하였고, 북경시 여자 중학교 제2중학교 및 제6중학교 교장으로 취임 |
1951 |
제1회 전국 여성 연합 후보 위원회에 당선, 중화인민공화국 8대 대표 취임 |
1955 |
제4회 광역시 정협 위원회 상무 위원회 북경 제 6중학 당지부 비서 겸 교장으로 취임 |
1956 |
중국 공산 제8차 전국대회에 대표로서 참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