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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

운암 김성숙선생은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으로써 극좌, 극우 대립 속에서 좌우합착을 위해 노력하였으며,
이승만ㆍ박정희 독재정권에 맞서 대한민국 국민이 주인이 되는 민주화운동의 선봉에서 자주적 독립국가 건설 운동에 매진하였다.

약법삼장(約法三章)

  • 첫째,임정(臨政)은 비록 개인자격(個人資格)으로, 입국(入國)하기로 되었으나 미군정(美軍政)이 용인하는 한도 내에서 정치활동을 할 것인데 국내에서 극좌(極左)·극우파(極右派)의 대립항쟁하는 사태에 임하여 임정(臨政)은 어느 파(派)에도 편향함이 없이 초연한 입장을 취하여 양파(兩派)의 대립을 해소시키며 다 같이 포섭하도록 노력할 것

  • 둘째, 입국(入國) 즉시로 전국각정당사회단체(全國各政黨社會團體) 대표자와 각지방반일민주(各地方反日民主) 인사를 소집하여 비상국민대표대회(非常國民代表大會)를 가져 임정(臨政)은 이 대회에서 30여년간 지켜온 임정헌법(臨政憲法)과 국호(國號)·연호(年號)를 채택하는 조건 하에서 임시(臨時)의 정원을 확대 개선하는 동시에 명실상부한 한국민주정부(韓國民主政府)를 재조직할 것

  • 셋째, 미(美)·소에 대해서는 평등한 원칙 하에서 외교 관계를 수립할 것

- 해방 후 운암 김성숙선생이 임시정부요인들에게 입국 전 3가지 행동방침을 제시함 -

해방 후 정치활동
해방 후 좌우합작을 주창하며 몽양 여운형과 함께 근로인민당을 조직하고 해방정국에서 좌우합작운동을 펼치는 중요한 몫을 담당했고 1955년 진보당 추진위원회에도 관여하였고 5.16 군사 쿠데타 이후에 이른바 통일사회당 사건으로 다시 옥고를 치루게 되었으나 독립유공자임이 감안돼 집행유예가 선고되었다. 출감 이후 1965년 혁신정당(신민당)을 조직하여 정치인으로 활동하였다.

근로인민당(勤勞人民黨) 재건 사건

운암 김성숙선생은 몽양 여운형과 함께 좌익세력인 민족전선을 탈퇴하고 중간세력인 근로인민당을 창당하였으나, 여운형의 암살로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북한의 부수상급에 해당하는 거물간첩 박정호로부터 막대한 공작금을 받아 근로인민당을 재건하고 김일성의 조종에 따라 남한의 정치변혁을 도모했다는 혐의를 받아 국가보안법 위반 협의로 체포, 구형당한 사건이 근로인민당 재건 사건이다.
근인당창립선언발표 (『민보』1947. 5. 28. 기사)

통일사회당(統一社會黨) 사건

통일사회당 창립 당시 대표위원으로 운암 김성숙선생이 추대되어 민주사회주의를 표방하면서 한일국교정상화와 월남파병 반대 및 애국적 혁신세력과의 통합을 추진하기 위해 1960년 창당하였다. 1961년 5·16 쿠데타 이후 통일사회당 경남도당의 활동이 집권세력에 의해 북한을 이롭게 하는 이적(利敵) 행위로 군사법정에서 단죄되었던 사건이 통일사회당사건이다.
통사당 창당대회 –민주사회주의를 표방- (『마산일보』1966. 9. 21.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