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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이달의 독립운동가
관리자
조회수 : 178   |   2018-01-29


◎ 약전
국가보훈처(처장 피우진)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조지 애쉬모어 피치(george ashmore fitch, 1883. 1. 23~1979. 1. 20.) 선생을 2018년 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고 밝혔다.

선생은 중국 상하이에서 장로교 선교사인 아버지 조지 필드 피치가 한국인들과 접촉하며 독립운동을 지원하는 모습을 보며 성장했다.

1909년 미국에서 목사가 되어 상하이로 돌아온 후 ymca에서 활동하며 크레인(les rid crane) 주중 미국대사에게 여운형을 소개하여 주었고, 한국 독립운동가를 위한 회합장소를 제공하였다.

1919년 미국에 설립된 한인구제회가 재정적 어려움을 겪자 상하이 주재 외국인 선교사들을 모아 적극적인 모금에 나섰고, 한인학교인 &lsquo인성학교&rsquo를 위해서도 모금활동을 하였다.

1932년 4월 윤봉길 의거로 인해 일본경찰에 쫓기던 김구, 엄항섭, 안공근, 김철을 자택에 숨겨주었으며, 위치가 노출되자 중국인으로 위장시켜 아내인 제랄딘과 상하이를 탈출시켰다. 이후 프랑스
조계지역 언론과 경찰에 서한을 보내 일본 경찰의 한국인에 대한 불법 체포와 검문에 항의하였다.

1937년 일본군이 난징 대학살을 일으키자 당시 난징에 있던 외국인들과 함께 국제위원회를 조직하여 일제의 만행을 세계에 알리는데 노력했다.

1941년에는 미얀마 랭군과 충칭을 연결하는 미얀마로드 미군 수송활동에 참여했고,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중국 국민당의 연락사항을 미국 전략정보국(oss)에 전달하는 첩보작전을 수행하였으며,
1942년 중국 국민당 정부를 상대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승인을 청원했다.

해방 후, 1947년 한국 ymca 총간사로 임명되어 6.25전쟁 중 구호활동에 전념하다 1951년 은퇴했다.

정부는 1968년 조지 애쉬모어 피치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하였다.



◎ 소개글

일제강점기 대한독립운동은 전 세계를 무대로 진행되었다. 그 중 해외 독립운동은 지지기반이 약하고 언어 등 제약이 있었으므로 현지인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였다.
대한민국정부는 독립운동을 지원한 현지인들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2017년까지 56명의 외국인에게 건국훈장을 수여하였다.

조지 애쉬모어 피치(George Ashomore Fitch, 한자명 費吾生)는 미국 장로교 선교사로서 대한독립운동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였던 외국인 중 한 명이다.
또한 그의 아버지 조지 필드 피치(George Field Fitch, 한자명 費啓鴻)와 그의 부인 제랄딘(Geraldine Townsend Fitch)까지 2대에 걸쳐 부자와 부부가 우리나라 독립을 위해 헌신하였다.
독립운동사에서‘피치 목사’는 널리 알려진 인물이었으나 그 일가가 함께 활동했다는 내용은 명확하게 알려지지 않았었다. 따라서 외국인 독립운동가 ‘조지 애쉬모어 피치’를 알기 위해서는 그 일가를 살펴봐야 한다.

피치 일가는 1900년대부터 한국과 인연을 맺기 시작하여 일제강점기, 대한민국정부수립 및 6.25전쟁을 거치는 긴 시간을 함께 했다. 한국독립운동을 지원한 외국인들 중에서 피치 일가는 2대에 걸쳐 한국독립운동을 지원했다는
점에서 수많은 외국인 지원자들 중에서 하나의 독특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또한 피치 일가는 가족이 전부 기독교 선교사로 중국에서 활동하며 동아시아 지역에서 선교, 서구적 교육, 구호활동 등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었다.
이들은 한국인들의 독립운동을 지원하며 제국주의의 폭압적인 성격을 파악하게 함으로써 제국주의 타도에 앞장섰다.

또한 피치 일가는 일제강점기의 활동에만 그치지 않고 해방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한국과 타이완(臺灣)에서 활동했다. 해방 직후인 1947년 한국 YMCA 총간사로 한국에 온 애쉬모어와 제랄딘은 한국의 YMCA 조직과 함께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을 이어갔다. 특히 제랄딘은 1947년 중앙여자전문학교를 중앙대학교로 개편하는 과정에 도움을 주며 명예학위를 받기도 했다.

피치 일가의 활동에서 보이듯이 대한독립운동은 민족주의 성향이 다분한 한국인들만의 투쟁은 아니었다. 대한독립운동에는 피치 일가를 비롯해 많은 외국인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 이유는
한국독립운동이 지니는 가치 때문이었다. 대한독립운동은 한국인들과 외국인들이 힘을 모아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통치에 저항하며 세계인의 보편적 가치인 인류애와 자유라는 기치를 되찾고자 한 자유운동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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