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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이달의 독립운동가
관리자
조회수 : 390   |   2017-07-03


7월 이달의 독립운동가


조마리아는 황해도 해주군에서 태어났으며 안태훈과 혼인 후 1897년 뮈텔주교에게 영세를 받고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서 일생을 살았다. 조마리아는 슬하에 안중근, 안성녀, 안정근, 안공근 등 3남 1녀의 자녀를 두었는데 이들 모두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 자녀들이 독립운동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은 조마리아의 가르침과 지지 덕분이었다.

1907년 국채보상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장남 안중근은 국채보상기성회 관서지부를 개설하여 의연금 모집에 앞장섰다. 조마리아도 1907년 5월 평안남도 ‘삼화항 은금폐지부인회’의 제 2차 의연활동에서 은장도, 은가락지, 은귀걸이 등 20원 상당의 은제품을 헌납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국채보상운동의 참여를 독려하였다.

1909년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고 사형을 언도 받자 조마리아는 안중근에게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게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다. 비겁하게 삶을 구걸하지 말고 대외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다”라는 마지막 당부의 말을 전하고, 안중근의 사촌 안명근을 통해 수의를 지어 보냈다. 자식을 먼저 떠나보내고도 조마리아는 끝까지 의연함을 잃지않고 남은 가족들과 함께 나라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였다.

안중근 의거 후 조마리아는 1910년 러시아로 망명하였다. 처음 러시아 연해주 크라스키노에 정착하였다가 1941년 니콜리스크에서 자녀들과 함께 독립운동에 매진하였는데, 1920년 1월 31일자 『독립신문』보도에 따르면 쉬는 날 없이 동포를 각성시키는 사업에 종사하였다고 한다.

1922년 조마리아는 상하이로 이주하였다.
 1926년 임시정부의 경제적 위기를 해소하기 위한 ‘임시정부경제후원회’ 창립에 참여하였고 위원으로 선출되어 후원회를 이끌었다. 조마리아는 1927년 7월 15일 상하이에서 위암으로 별세했다.

정부는 고인의 공적을 기리며 2008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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