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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의 독립운동가 이종희(李鍾熙)선생 선정
관리자
조회수 : 1724   |   2009-09-01


 

◈ 의열단 정예간부를 양성한 ‘명조련사’ ◈

◈ 광복군 총사령부 제1대대장으로 항일무장 투쟁 이끌어 ◈

국가보훈처는 광복회․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의열단원에서 조선의용대 총대장, 광복군 제1지대 지대장으로 민족의 독립을 위해 평생을 헌신하신 이종희 선생의 공적을 기리고자 9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

선생은 1890년 4월 19일, 지금의 전라도 김제시 금산면 용호리에서 태어났다.

한말 동학 남접의 조직을 비롯하여 금산사를 배경으로 한 미륵신앙의 혁명적 사상과 역사를 토대로 민족의식을 키워나간 선생은 1919년경 중국으로 망명하면서 독립운동가로서의 삶을 시작하였다.

선생은 망명 후 1919년 조직되어 일본인 관리 암살 및 관청 파괴를 주도한 ‘의열단’에 정식단원으로 가입하여 중국 상해에서 일본군 다나카기이치(田中義一) 대장 살해사건에 가담하였으며, 선생은 1926년 1월에 광주로 이동하여 다른 10여 명 단원들과 함께 황포군관학교 제4기 보병과에 입학해 재광동조선혁명군인회와 유월(留粵)한국혁명동지회에 참여하면서 혁명운동의 열기를 만끽하고 새로운 운동의지를 다져갔다.

1926년 10월에 황포군관학교를 졸업하고 중국군 소위로 임관한 선생은 남창 주둔 국민혁명군 부대에 배속되어 근무하면서 의열단 남창지부원으로 계속 활동하는 한편 1932년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교관으로서 한인청년 사관 양성에 힘썼다.

이러한 청년 투사 양성 및 조직의 운동역량 강화로 의열단의 위상은 더욱 높아졌고, 1935년 조선민족혁명당 창립의 결실을 맺게 되었다.

선생은 1937년에 조선민족혁명당 중앙위원으로 약산 김원봉과 함께 민족혁명당을 이끌어갔고, 이어 1938년 조선혁명간부학교 졸업생을 포함한 100여 명의 정예요원들로 구성된 조선의용대 조직에 참여하였으며, 1942년 12월 광복군 제1지대에 편입하였다.

김원봉이 광복군 총사령부 부사령 겸 제1지대장이었고 선생은 제1지대 총무조장으로 활약하다 1943년 김원봉의 뒤를 이어 제1지대장을 맡아 항일무장투쟁을 이끌어나갔다.

또한 선생은 1943년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의정원 전라도 대표 및 임시 의정원으로 활동하였다.

선생이 살았던 중경은 분지여서 늘 안개가 끼고 대기가 습해 독립운동가와 그 가족 중에 폐병을 앓는 경우가 많았는데 선생도 병상에서 해방을 맞이하였고, 귀국선을 타고 부산항에 도착하였으나 1946년 4월 29일 고국 땅을 밟기 직전 배안에서 그만 눈을 감고 말았다.

1977년 정부는 고인의 공적을 기리어,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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