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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독립운동가 양근환(梁槿煥)선생 선정
관리자
조회수 : 1718   |   2009-05-01


 

◈ 친일거두를 응징한 대한 청년 ◈

국가보훈처는 광복회․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1921년 일본 도쿄에서 친일단체 국민협회의 회장 ‘민원식’을 처단하여 일제의 앞잡이들에게 경종을 울린 양근환 선생의 탄생 115주년을 기리고자「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

선생은 1894년 5월 9일 황해도 연백군 은천면에서 태어나 18세에 사립 동명학교를 졸업하고 20세가 되던 1914년에 서울에 올라와 공업전습소를 다녔다.

서울에 머물러 있는 동안 선생은 일제의 식민통치에 강한 불만을 품게 되었고 한때 조선보병대에 입교하여 일본인과의 다툼으로 체포되어 50일간 구류를 살기도 하였다.

1919년 3․1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선생은 즉시 고향에 내려가 만세 시위운동에 참여하였고, 이후 일제의 탄압으로 국내에서의 항일투쟁이 어려워지자 일본으로의 유학을 결심하였다.

도항 후 일제에 대항할 힘을 기르기 위해 니혼대학 정치경제과에 입학하였으나 가난으로 학업을 중도에 포기하고 만다.

3․1운동 이후 일제가 문화정치를 표방하자 친일단체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그 중 국민협회는 신일본주의를 내세우며 총독부를 적극 지지하였고 친일파 규합운동에 앞장섰다.

회장인 ‘민원식’은 내선일체론을 주장하며 참정권 운동을 주도했고, 1921년 2월 이를 위해 일본 도쿄를 방문하게 되었다. 선생은 ‘민원식’의 방문 소식을 듣고, 그를 처단하기로 마음먹었다.

1921년 음력 2월 16일 도쿄역 호텔 제14호실로 찾아간 선생은 민원식과 독립운동에 관한 설전 끝에 ‘그대와 같은 자야말로 민족을 배반하는 자이다’라고 호되게 꾸짖고, 가슴에 품었던 비수를 뽑아 ‘민원식’을 쓰러뜨렸다.

거사 후 선생은 가족들에게 작별을 고하고 상해로 가는 배에 올랐으나, 뒤쫓아 온 경찰에 체포되고 말았다.

1921년 5월 2일 도쿄지방법원에서 첫 공판이 열렸을 당시, 선생은 당당한 자세로 일본제국주의의 실상을 폭로하였으며 무기징역을 언도받고 12년간의 옥고를 치렀다.

선생의 친일파 척결 소식은 재일 유학생들의 민족의식을 뜨겁게 달구었고 친일 앞잡이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되었다.

해방 후 선생은 혁신탐정사를 조직 반공투쟁에 앞장서기도 하였으나, 한국전쟁의 와중에 북괴군에게 피랍되어 고문을 당하던 끝에 1950년 9월 15일 경기도 파주에서 후퇴하는 인민군에 의해 안타깝게 숨을 거두고 말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80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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