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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작신문] 독립운동가 운암 김성숙 선생 51주기 추모제 열려
관리자
조회수 : 48   |   2020-05-15


​조선의용대를 조직하고 임시정부 국무위원으로 항일투쟁에 헌신한 김성숙 선생을 기리는 '운암 김성숙 선생 제51주기 추모제'가 12일 오전 11시, 국립서울현충원 임시정부요인 묘역 앞에서 (사)운암김성숙선생기념사업회(회장 민성진) 주관으로 열렸다.


이날 추모제에는 김성숙 선생 유족, 서울남부보훈지청장, 광복회장, 독립운동 관련 단체장 및 회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운암 김성숙 평전'이 출간된 기념으로 제단에 평전을 바치는 평전 봉정식과 평전을 작성한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에게 감사패 전달 시간도 가졌다.

 

운암 김성숙 선생(1898. 3. 10.~1969. 4. 12.)은 평안북도 철산군에서 출생하고 19세에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으며, 1919년 3월 경기도 남양주군 봉선사의 승려로 있을 때 ‘조선독립군 임시사무소’라는 명의로 동료들과 함께 격문을 만들어 인근 동리에 살포한 사건으로 일경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조선무산자동맹’과 ‘조선노동공제회’에 가담하였으며, 1923년 일경의 탄압이 심해지자 불교 유학생으로 중국 북경으로 건너 가 ‘고려유학생회’ 및 ‘창일당’을 조직하고 ‘조선의열단’ 활동에 참여하는 등 적극적으로 항일민족운동을 전개하였다. 

 

이후 중국 전역의 한국인 청년들을 모아 ‘재중국조선청년동맹’을 조직하고, 1936년에는 ‘조선민족해방동맹’을 결성하였다. 1938년 ‘조선의용대’ 간부로 임명되어 활동하던 중 1942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국무위원으로 취임하였고, 이후 내무차장으로도 활동하였다.

 

1943년에는 임시정부 행정부의 한 부처로 선전부가 설치됨에 따라 조소앙, 신익희 등 14명과 함께 선전위원으로 임명되는 등 활발한 독립운동을 펼쳤으며, 광복 후에는 서울로 들어와 근로인민당 결성 등 정치인으로 활동하다가 1969년에 서거하였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8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 동작신문 김국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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