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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경일보] [기고]중국을 관통하는 조선의용군의 빛나는 항일역사탐방기(1)
관리자
조회수 : 3069   |   2019-03-06


지난 2월 21일부터 24일까지 3박 4일간 더불어민주당 대구광역시당이 주최하고 재중화북항일역사기념사업회가 후원한 중국 화북·화중지역 항일 유적을 탐방하는 기회를 가졌다. 

더불어민주당 달서구병 지역위원장 김대진 단장과 달서구의원 김태형 외 20여 명의 답사단이 함께한 이번 탐방루트는 북경을 거쳐 황하를 가로지르는 중국 대륙의 심장부인 중원지역까지 4,000km에 이르는 대장정으로 상해와 임시정부청사에 집중된 항일역사루트를 벗어나 북경을 거쳐 조선의용군의 빛나는 십자령전투지인 태항산맥 일대까지 답사하는 보기 드문 기획이다. 

여기에 3000년 전 은나라의 수도이며, 중국 한자의 기원인 갑골문자의 발현지인 세계 문화유적지 하남성 안양시 은허박물관과 중국 역사상 최고의 문화 융성 시기인 송왕조의 수도 개봉을 복원한 송왕조 청명상하도원, 세계 문명의 4대 발상지 중 하나인 황하유역도 포함되어 있어 3·1독립운동,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과 중국의 역사를 관통하는 동북아의 훌륭한 역사탐방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북경에 도착하고 첫 걸음은 숭문문교회_崇文門敎堂으로 손정도 선생이 최초로 조선어 예배를 시작한 곳이다.
1870년 미국 감리교에서 화북지역에 건립한 최초의 교회로 북경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이며, 손정도와 안창호가 다녀간 그 모습 그대로 잘 보존되고 있다.

다음은 안창호의 숨결을 따라 도착한 화풍빈관_옛_육국호텔_六國飯店이다.
1900년에 지어진 당시 북경의 최고급 호텔로 여러 국가의 공사관이 이 호텔 안에 있어 외교가를 형성하였고 상류층의 교류의 장소였다. 이 유서 깊은 호텔에 1920년 안창호가 미 의회 대표단을 만나 한국 독립에 대해 협조를 호소한 접견 장소로 당시의 연회장 (현재 1층 커피숍)이 지금도 존재하며 현재도 성업 중이다. 답사단이 이곳저곳 보며 사진을 찍자 호텔 직원이 상황을 물어보아 설명을 하자 그들은 이곳이 역사적인 장소인지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밖을 나와 큰 대로를 따라 한참을 걸어서 도착한 곳은 YMCA_중화성경회유적_中华圣经会旧址으로 고려기독교청년회가 1920년 2월 10일 예배당에서 성립된 곳으로 이후 한인교회로 불렸다. 현재는 건물 한동만 남아 있지만 예전엔 총 3동으로 큰 규모였다. 한국인 유학생들, 안창호, 신채호, 한진산, 서왈보 등 독립운동가와 연결되어 화북 일대 한인들의 결집에 커다란 임무를 수행한 곳이다.
1922년 6월 5일 안창호가 이곳에서 연설하였고, 김산(장지락)과 김성숙의 첫 만남이 이루어진 곳이기도 하다.

이어 관광객도 많이 찾는 베이징의 명소인 왕푸징 근처에 도착했다. 이번 북경 항일 유적 탐방에서 가장 뛰는 장소 중 하나인 그곳! 하지만 입구에서부터 쓰레기가 쌓여있고 건물 밖이나 안에는 아무런 표지도 없었다.

이육사_이원대_순국지는 옛 일본 영사관 헌병대 건물로 지하 감옥이 있었던 곳이다. 현재는 오랫동안 방치되어 그야말로 흉가처럼 버려진 미개발 주거지이다. 건물의 상당 부분은 오래전에 폐쇄된 상태다. 이 건물들은 옛 모습 그대로라고 한다. 

이곳 지하 감옥에서 1943년 6월 17일 조선의용대원 이원대가 태항산맥에서 전투 중 생포되어 석가장 수용소를 거쳐 이곳에서 고문 끝에 1943년 6월 17일 순국하였다. 1944년 1월 16일 이육사가 모진 고문 끝에 순국하였다.

이육사는 3형제가 모두 의열단원으로 윤세주와 함께 조선혁명정치군사간부학교 1기 동기이며 절친이었다. 그의 대표 시는 광야, 청포도, 절정 등이 있고 옥중 유언 시 ‘광야’가 이 감옥에서 탄생되었다.

현재 중국의 수도 북경에서는 특히 중국의 국회격인 인민대회 회기기간(2월 말~3월 중순), 구호가 담긴 현수막 등을 사용해 가두 활동을 펼치면 구속 또는 추방의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찌 이 안타까운 마음을 보다듬을 수가 있나 싶을 사이도 없이 답사단의 손에는 이내 태극기가 펼쳐졌다.

현재 북경에서 그나마 흔적이나 찾아볼 수 있는 항일독립운동 유적지는 이곳을 포함해 몇 곳에 불과하다. 하루가 다르게 끊임없이 추진되는 재개발 속에 우리 독립투사의 흔적 대부분이 역사 속으로 완전히 사라졌다고 한다. 

이곳도 조만간 철거될 운명을 맞을 우려가 크다. 중국지역에 대한 항일독립운동 유적지 보호가 임시정부 청사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북경도 상해와 함께 항일독립운동 중심지였음에도 보존 및 관리가 너무나 소홀한 것이 아닌가 싶어 진정 가슴이 쓰리다. 

이제 신채호 선생을 만나러 간다. 북대홍루_北大红楼다. 북경대학교 도서관으로 신채호가 조선상고사를 연구하고 중국 석학들과 교류했던 장소이다. 고려기독교청년회를 주도했던 이대위, 한글학자 이윤재도 북경대 학생이었다. 중국 5.4운동과 신문화운동의 발상지이다. 깔끔히 보존된 교실의 책상을 보며 이육사가 청강생으로 수학하던 모습이 생각나 다시 한번 가슴이 아프다.

한적한 북경의 조용한 주택지 골목으로 들어선다. 후고루원후통_後鼓樓苑다. 전 재산을 팔고 전 가족이 망명해 망국 시기 항일 독립투쟁의 기초를 닦으신 이회영이 사셨던 골목이다. 이곳은 항일독립투사들이 사랑방과 같은 곳으로 선생과 함께 북경삼걸北京三傑로 불리던 신채호, 김창숙, 신규식이 매일같이 모였던 곳이다. 선생들이 이곳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얼마나 열띤 토론을 벌였을까? 1919년 겨울 소설 상록수의 심훈이 이 집에 기거하며 만터우를 저녁으로 얻어먹고 시 ‘고루의 삼경’을 남겨놓았다. 

북경에서의 뜻깊은 항일 유적 탐방을 환영해주신 김한규_재중국 북경 총영사님과의 대화로 동북아 평화협력과 항일운동의 의미를 되새기며 하루를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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