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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 엄혹한 시대에 맞서 여러차례 넘어지면서도 하느님의 뜻을 찾았던 성직자
관리자
조회수 : 227   |   2019-01-04


함세웅 신부는 누구 


‘그’라고 해서 대단하거나 매우 도덕적인 그래서 성인이나 성자의 삶을 살았다고 볼수는 없다. 함 신부 역시 인생의 굴곡에서 때로는 흠이 있었고 때로는 타인이 보기에 방향을 잘못 틀었던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현 대한민국에서 존중받아야 할 위인 중 한명이다.

함세웅, 194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당시 서울은 일본식 표기로 경성부라고 했다.

어릴때부터 서울 용산구의 용산성당에 다니면서 로마 가톨릭교회에 입문하였다. 세례명은 아우구스티노이며 유년기에 겪은 한국 전쟁 중 전쟁의 참상을 목격한 것이 계기가 되어 성직자의 길을 걷게 됐다고 알려져 있다. (본인도 그리 서술하고 있다)

1960년에 가톨릭대학교에 입학했고, 군 복무 후 1965년부터 1973년까지는 로마에서 유학 생활을 했다. 귀국한 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성당에 부임하였다.

그가 천주교내 대표적 진보 인사가 된 것은 1974년부터였다.

천주교 원주교구장 지학순주교 등 각계 인사들이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대거 구속된 사건을 계기로 그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창립을 주관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젊은이들이 요구했고 그 부름에 종교인으로서 응한 것이라고 한다.

그는 곧바로 1974년의 민주회복국민선언과 1976년의 명동 3.1 민주 구국선언에 모두 참여하고 제4공화국에서 두 차례 투옥됐다. 1979년 10·26 사건 때도 수감 중이었다가, 긴급조치 9호가 해제된 뒤에 석방됐다. 이쯤에서 담배를 끊었다. 감옥이 금연을 도운셈이다.

영화로도 만들어져 익히 알려진 1987년 6월항쟁 때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홍보국장으로 재직 중이었고, 가톨릭대학교 교수를 거쳐 장위동성당, 상도동성당, 제기동성당 주임신부를 지냈다.

역사의 거대한 물길을 만들어 낸 것이다.

함 신부를 이야기 할 때 이 시대를 빼놓으면 말이 안된다.

1987년 1월14일 서울대생 박종철이 경찰의 대공분실(남영동) 조사실에서 물고문을 받다가 숨지자, 경찰은 심장마비에 의한 사망으로 위장하려고 했다.

양심적인 의사(오연상)와 부검의(황적준), 직업정신에 투철했던 검사(최환)에 의해, 고문치사임이 드러났음에도 경찰은 고문 하수인 2명만 구속하고 사건을 덮었다.

하지만, 그해 5월18일 정의구현사제단이 박군 고문치사 사건이 은폐 조작됐음을 폭로했다.

이것은 곧바로 6월 항쟁으로 이어졌다. 대한민국의 거대한 역사의 바퀴가 천주교 사제들의 목숨을 건 고백으로 돌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함 신부는 당시에는 폭로를 주저했었다고 한다. 성당에 폐를 끼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나서야 할 야당이 나서지 않으면서 어쩔 수 없이 사제단들이 앞장서야 했다.

그는 그 순간을 “요나가 되는 체험”이라고 말한다.

구약성경에 보면 앗시리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갔을 때의 요나라는 예언자가 있었다. 하느님이 요나에게 ‘앗시리아 도성 니네베에 가서 회개하라고 외쳐라’고 했지만, 요나는 엄두가 안 나서 바다로 도망갔고, 그는 결국 고래 뱃속에서 사흘을 지내다가 하느님께 ‘약속대로 하겠다’고 기도한 뒤 생환했다. 그는 그때 자신이 요나의 짐을 부여 받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요나의 자리를 당시 사제단 단장이던 김승훈 신부가 맡았다.

김 신부는 3·1민주구국선언 사건(1976년) 때 함 신부가 구속됐고, 자신은 불구속된 데 대해 부채감을 늘 갖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모든 짐을 짊어진 것이다.

아울러 그를 이야기 하자면 김근태 전 의원을 빼놓을 수 없다. 평생의 동지이자 친구로서 김 전의원을 지켜본 함 신부는 지난 2012년 주임신부 은퇴 후에도 김근태 전 의원의 사상과 생각을 사람들에게 지금까지 알려오고 있다. 앞서 지난 2018년 11월17일에 광주를 찾은 그는 광주시 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광주한반도포럼 주최 김근태민주주의학교 첫번째 강좌인 ‘김근태 삶과 사상’을 강의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1980년 광주의 정신은 돈으로 보상되는 순간 순수성이 훼손됐다. 피해자와 가족들의 아픔을 진정으로 치유될 수 있게 해야 한다”며 “독재정권하에서 국가폭력이 이뤄진 과거의 사태가 다시는 이 땅에서 있어서는 안 되고, 더 나은 새로운 민주주의를 만들어 가야 한다”고 했다.

덧붙여 1987년 이후에도 그의 삶의 흔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허나 지면에 그의 삶 전체를 옮길 이유는 없다. 간단한 약력으로 가름한다.

함세웅(咸世雄, 1942년 6월28일 ~ )은 대한민국의 교육자, 사회운동가, 로마 가톨릭교회 신부이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을 창립하고 고문을 역임했다. 현재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이사장,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 항일독립운동가단체연합회 회장,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 한국위원회 고문을 맡고 있다.

노병하 기자 bhno@j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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