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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코리아] 국가보훈처,제71주년 광복절 계기 김순권 선생 등 독립유공자 235명 포상
관리자
조회수 : 1967   |   2016-08-14


국가보훈처(처장 박승춘)는 8월 15일(월) 제71주년 광복절을 맞아 저명한 참전용사인 김영옥 대령의 부친으로 미주에서 독립운동 자금 지원 등에 힘쓴 김순권 선생 등 235명의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를 포상한다고 밝혔다.

이번에 포상되는 독립유공자는 건국훈장 152명(애국장 58, 애족장 94), 건국포장 26명, 대통령표창 57명이다. 

훈․포장과 대통령표창은 제71주년 광복절 중앙기념식장과 지방자치단체가 주관하는 지방기념식장에서 유족에게 수여된다. 

이번 포상자 235명 중 국가보훈처가 일제의 수형기록과 정보문서, 신문기사 등 각종 문헌자료를 분석하고 현지조사를 실시하여 자체 발굴․포상하게 된 독립유공자는 227명이다. 

이로써 독립유공자로 포상을 받은 분은 1949년 포상이 시작된 이래 건국훈장 10,649명, 건국포장 1,176명, 대통령표창 2,739명 등 총 14,564명에 이른다.

앞으로도 국가보훈처는 독립기념관, 국사편찬위원회, 국가기록원, 지방자치단체, 문화원 등과 사료수집 협조 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고 국외 소장 자료를 지속적으로 수집함으로써 알려지지 않은 독립유공자를 발굴하는데 더욱 노력해나갈 계획이다.

제71주년 광복절 포상자 중 주요 인물들의 독립운동 공적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대토벌’에 맞서 끝까지 싸우다 옥중 순국한 의병, ‘최봉선’ 선생

일제의 이른바 ‘호남 대토벌’에 맞서 의병으로 활동하다 순국한 최봉선(崔鳳先) 선생께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된다. 선생은 1908년 음력 2월 의병장 김영백(金永伯)의 부하로 들어가 이듬해 음력 9월까지 동료의병 40여 명과 함께 전남 장성과 전북 정읍․흥덕․고창 등지에서 항일투쟁에 참여하였다. 체포되어 악형 끝에 징역 7년을 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2년 2개월 만에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선생에 대한 포상은「판결문」(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 1910)에서 활동내용을 파악하고, 국가기록원에서 수집한『합장부(合葬簿)』(전주형무소, 1916)에서 순국 사실을 확인함으로써 이루어졌다. 합장부는 형무소에서 수감 도중 사망한 수인(囚人)들을 가매장하고 일정기간이 지나면 합장한 내용을 정리한 목록이다. 

▸ 대한제국 경찰간부 출신의 연해주 의병 지휘관, ‘전제익’ 선생

1910년대 노령 연해주 일대를 무대로 의병을 조직하여 항일무장투쟁을 선도한 전제익(全濟益) 선생께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된다. 선생은 함경북도 회령 출신으로 대한제국 경찰간부(성진 경무관)로 활약하다 1905년 을사늑약 이후 망명하여 1908년 노령 연해주에서 동의회 발기인으로 참여한 뒤 본격적으로 독립운동 전선에 뛰어들었다. 1908년 이범윤이 이끄는 연해주의병에 도영장으로 참가하여 함경북도 접경에서 국내 진공작전을 이끌었는데, 당시 안중근이 선생의 부하(우군영장)로 종군하였다. 1910년 경술국치에 반대하여 러시아 연해주의 한인 지도자들과 함께 성명회 선언서에 서명하였으며, 1910년대 후반까지 연해주 일대에서 홍범도․백규삼 등과 함께 항일무장투쟁을 계속하였다. 

▸ 평화 시위에 총격을 가한 일인 순사부장을 응징한 ‘홍문선’ 선생

경기도 화성에서 독립만세동운동에 참여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른 홍문선(洪文善) 선생께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된다. 선생은 1919년 3월 28일 화성군 송산면 사강리에서 벌어진 독립만세운동에서 자전거를 탄 채 만세시위운동을 감시하던 일본인 순사부장이 평화적 시위를 이끌던 주도자를 향해 총격을 가하자, 이에 분개하여 시위 군중을 이끌고 순사부장 처단을 주도하였다. 이로 인해 체포되어 징역 7년이라는 만세운동 참여자로서는 이례적인 중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선생에 대한 포상은「판결문」(경성지방법원, 1920)과『매일신보』(1920.8.4.) 기사에서 구체적인 활동내용을 확인함으로써 이루어졌다. 선생의 투쟁 사례는 송산면 사강리 시위투쟁이 다른 지역의 일반적인 시위와 달리 매우 격렬하였음을 보여준다. 

▸ 임신한 몸으로 남편의 투쟁에 동참한 여성독립운동가 ‘정수현’ 선생

임신한 채 남편의 독립운동자금 모집 활동을 돕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른 정수현(鄭壽賢) 선생께 대통령표창이 추서된다. 선생은 1920년 9~10월 경 서울에서 모형 권총 2정을 구입하고 일제 관헌의 눈을 피해 대동단 간부로서 당시 전남 광주에서 독립운동자금 모집에 분주하던 남편 신덕영(申德永, 1963 건국훈장 독립장)에게 전달하였다가 체포되어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매일신보』(1920.12.21) 보도에 따르면 처에게서 모형 권총을 전달받은 신덕영은 이를 동지들에게 전달하였고 동지들은 이 모형권총을 활용하여 수백환의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는데 성공했다고 한다. 한편 선생은 일제 당국의 취조 과정에서 임신 6개월인 사실이 알려져 세상을 놀라게 하였다. 징역 8년을 받고 선생과 함께 투옥되었던 남편 신덕영은 1923년 5월 병으로 가출옥한 후 중국으로 탈출하여 1930년대 초까지 활동을 계속하였다.

▸ 독립운동 통합에 힘쓴 하와이 한인사회의 큰 지도자, ‘민찬호’ 선생

미국 하와이에서 한인단체의 임원․지도자로 활동하면서 여러 차례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한 민찬호(閔燦鎬) 선생께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된다. 선생은 황해도 평산 출신으로 배재학당에서 수학하였으며, 1905년 하와이로 건너가 한인교회 목사로 시무하였다. 1909년 하와이 합성협회 대표로서 공립협회와의 통합을 주도, 국민회 출범에 기여하였고 1910년부터 대한인국민회 로스앤젤레스지방회 부회장으로 활동하였다. 1918년 뉴욕에서 개최된 소약국동맹회에 대한인국민회 대표로 참석하였으며, 1921~1924년 하와이교민단 단장으로 활동했다. 이승만을 도와 하와이 한인기독학원 원장으로서 1923년 5월 남녀 학생 20명으로 구성된 ‘모국방문단’을 이끌고 모국을 방문하여 국내 동포들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1928년 대한민족통일촉성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1938년 하와이 중한민중동맹단 이사장으로 선임되었으며, 1943년에는 조선민족혁명당 하와이지부 위원장, 1945년 같은 당 선전부장으로 활동하는 등 70세에 가까운 고령에도 활동을 계속하였다. 

▸ 아들에게 불멸의 조국애 심어준 미주 독립운동가, ‘김영옥 대령의 부친’ ‘김순권’ 선생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한인단체의 간부로 활동하면서 여러 차례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한 김순권(金順權) 선생께 대통령표창이 추서된다. 선생은 경기도 남양 출신으로 1903년 2월 노동이민으로 하와이에 도착한 뒤 로스앤젤레스로 건너갔다. 1905년 4월 공립협회 레드랜드지방회 응접위원, 1910년 대한인국민회 로스앤젤레스지방회 평의원 및 동 지방회장 등으로 활동하였고 1924년에는 로스앤젤레스 한인교민단에서 활동하였다. 1932년 일제가 상해사변을 일으키자 대한인국민회 상해사변 임시위원부 수전위원으로 적극적인 활약을 펼쳤으며, 1910년부터 1936년까지 여러 차례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하였다. 슬하에 4남 2녀를 두었는데, 미군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이탈리아 전선에서 활약하고 6․25전쟁에도 참전하여 미국 은성무공훈장(1951), 대한민국 태극무공훈장(2005), 프랑스 레종드뇌르 무공훈장(2005)을 받은 저명한 참전용사 김영옥 대령(1919.1.29~2005.12.29)이 선생의 장남이다. 선생에 대해서는 2011년 국가보훈처가 공적을 확인하였으나 후손을 찾지 못하고 있다가 금년 로스앤젤레스 한인회 한우성 기자의 자료 제출과 심사요청에 따라 포상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 미주 한인사회의 부부 독립운동가, ‘임메불’․‘임정수’ 선생

미국 하와이와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에서 한인단체의 간부로 활동하며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한 부부 독립운동가 임메불(林메불)․임정수(林正秀) 선생께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된다. 

- 임메불 선생 : 1919년 로스앤젤레스 부인친애회 대표로 미주지역 여성단체가 통합한 대한여자애국단 조직에 참여하고, 1930~1936년과 1940년부터 1945년까지 대한여자애국단 총단장으로 활동하면서 여러 차례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하였다.

- 임정수 선생 : 1906년 하와이에서 공진회 조직에 참여하고 1907년 합성협회 총회장, 1909년 국민회 하와이지방총회장, 1912년 대한인국민회 총무, 1922년 동 샌프란시스코지방회장, 1938년부터 1940년까지 로스앤젤레스지방회 집행위원장으로 활약하면서 여러 차례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하였다. 

▸ ‘조선의 딸’을 자처하며 한국독립을 도운 중국인 여성, ‘두쥔훼이’ 선생

한국독립운동을 후원한 중국인 여성혁명가 두쥔훼이(杜君慧) 선생께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된다. 선생은 중국 광주 중산대학 재학 중 항일 혁명운동에 뛰어들었다. 광주를 무대로 독립운동을 펼치던 한국인 김성숙(金星淑, 1982 건국훈장 독립장)을 만나 1929년 상해에서 결혼하였다. 이때부터 한․중연대의 신념으로 남편과 함께 항일 선전활동에 열성적으로 참가하고 한국독립운동을 후원하였다. 또한 한국독립운동에 직접 뛰어들어, 1943년 2월부터 1945년 9월까지 중국 중경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외무부 요원, 1945년 5월 한국구제총회 이사로 활약했다. 선생이 한국의 독립을 얼마나 간절하게 염원했는지는 미주에서 발행되던 『독립』(1945.7.11)에 기고한 논설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자신을 ‘조선의 딸’로 자처하고 “나는 늘 조선부녀들의 일을 나의 일로 생각하고, 어떻게 하여야 우리 조선 부녀 동포들이 전민족의 해방을 위하여 공헌할 수 있을 것인가를 늘 생각하고 있다”면서 독립운동가 후원을 호소한 것이다. 이러한 활동은 항일여성운동 분야에서 국적을 초월해 일제 침략을 타도하려는 한․중 연합 항일투쟁의 모범적인 사례로 주목할 만하다.

국가보훈처(처장 박승춘)는 8월 15일(월) 제71주년 광복절을 맞아 저명한 참전용사인 김영옥 대령의 부친으로 미주에서 독립운동 자금 지원 등에 힘쓴 김순권 선생 등 235명의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를 포상한다고 밝혔다.

이번에 포상되는 독립유공자는 건국훈장 152명(애국장 58, 애족장 94), 건국포장 26명, 대통령표창 57명이다. 

훈․포장과 대통령표창은 제71주년 광복절 중앙기념식장과 지방자치단체가 주관하는 지방기념식장에서 유족에게 수여된다. 

이번 포상자 235명 중 국가보훈처가 일제의 수형기록과 정보문서, 신문기사 등 각종 문헌자료를 분석하고 현지조사를 실시하여 자체 발굴․포상하게 된 독립유공자는 227명이다. 

이로써 독립유공자로 포상을 받은 분은 1949년 포상이 시작된 이래 건국훈장 10,649명, 건국포장 1,176명, 대통령표창 2,739명 등 총 14,564명에 이른다.

앞으로도 국가보훈처는 독립기념관, 국사편찬위원회, 국가기록원, 지방자치단체, 문화원 등과 사료수집 협조 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고 국외 소장 자료를 지속적으로 수집함으로써 알려지지 않은 독립유공자를 발굴하는데 더욱 노력해나갈 계획이다.

제71주년 광복절 포상자 중 주요 인물들의 독립운동 공적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조선의 딸’을 자처하며 한국독립을 도운 중국인 여성, ‘두쥔훼이’ 선생

한국독립운동을 후원한 중국인 여성혁명가 두쥔훼이(杜君慧) 선생께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된다. 선생은 중국 광주 중산대학 재학 중 항일 혁명운동에 뛰어들었다. 광주를 무대로 독립운동을 펼치던 한국인 김성숙(金星淑, 1982 건국훈장 독립장)을 만나 1929년 상해에서 결혼하였다.이때부터 한․중연대의 신념으로 남편과 함께 항일 선전활동에 열성적으로 참가하고 한국독립운동을 후원하였다. 또한 한국독립운동에 직접 뛰어들어, 1943년 2월부터 1945년 9월까지 중국 중경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외무부 요원, 1945년 5월 한국구제총회 이사로 활약했다. 선생이 한국의 독립을 얼마나 간절하게 염원했는지는 미주에서 발행되던 『독립』(1945.7.11)에 기고한 논설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자신을 ‘조선의 딸’로 자처하고 “나는 늘 조선부녀들의 일을 나의 일로 생각하고, 어떻게 하여야 우리 조선 부녀 동포들이 전민족의 해방을 위하여 공헌할 수 있을 것인가를 늘 생각하고 있다”면서 독립운동가 후원을 호소한 것이다. 이러한 활동은 항일여성운동 분야에서 국적을 초월해 일제 침략을 타도하려는 한․중 연합 항일투쟁의 모범적인 사례로 주목할 만하다.

김변호 기자  upkoreane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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