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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신문]아무도 기억하려 하지 않는 이의 죽음
관리자
조회수 : 1892   |   2013-10-18


조선에서 온 붉은 승려

  
정찬주 지음김영사

철저한 자료고증으로 궤적 그려

조국의 독립을 위해 중국 대륙에서 치열하게 혁명 전선에 뛰어든 김성숙, 김산(장지락), 오성륜 등 수많은 조선의 전사들이 있었다. 책은 중국의 1927년 ‘광저우봉기’의 주도자이며 김산의 사상적 스승이었던 ‘조선에서 온 붉은 승려’ 김성숙의 생애를 그린 소설이다.

“내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붉은 승려 김성숙이었다.” 다른 책 <아리랑>에서 혁명가로 잘 그려진 김산이 중국 대륙에서 투쟁했던 조선인들에게서 사상적 뿌리인 김성숙을 그렇게 묘사했다.

사실적 전개를 리얼하게 재구성한 혁명전사들의 소설은 지극히 불교적인 스님 김성숙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소설은 조선에서 스님 생활과 함께 사회주의 운동을 하다가 1923년 26세의 나이로 중국 베이징으로 건너가 아나키스트와 민족주의 혁명가로 활동했던 김성숙의 삶의 궤적을 쫓아간다.

책은 반도와 대륙을 넘나드는 거대한 스케일을 보여주며 철저한 자료 고증을 통해 마치 당시 풍운의 무대를 직접 누비는 듯한 현장감을 전해준다. 작가 정찬주의 속도감 넘치는 문체로 조선인 혁명가들의 삶의 굴곡을 세밀하게 포착하면서 주인공인 김성숙 외에도 전설적 혁명가 김산, 거침없는 테러 투쟁으로 일본인들을 두려움에 떨게 한 의열단원 오성륜, ‘인민해방군가’를 작곡하여 중국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천재 음악가 정율성 등 조국의 새벽을 열고자 고군분투했던 항일투쟁가들의 삶이 펼쳐진다. 이들 항일운가들은 가장 적극적인 조선 혁명가들로서 모택동의 운명적 만남, 비밀스러운 막후 실력자 주은래와의 뜨거운 우정, 김성숙과 중국인 아내 두군혜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서로 엉킨다.

  
 

작가는 스님 출신의 항일운동가가 남긴 잊혀진 독립운동사를 복원한다. 운암 김성숙의 생애에 대해 ‘아무도 기억하려 하지 않는 자의 죽음’으로 묘사하는 작가는 비운의 주인공을 불운아로 기록한다. 중국 대륙을 누비며 조국의 독립을 위해 생을 바쳤지만 해방된 조국에서 간첩의 누명을 쓰고, 군사재판에 회부되었던 불운아로서, 그가 중국에서 ‘금강산에서 온 붉은 승려’라고 불렸던 과정을 극화시킨 책은 1916년 김성숙이 중국으로의 망명을 결심하고 집을 떠난 것이 시발점이다.

그는 봉천으로 가기 위해 원산, 청진을 거쳐 두만강을 건너려 했지만 국경수비대의 삼엄한 경계에 막혔고, 기회를 엿보던 김성숙은 시절인연에 끌려 용문사에서 불가에 입문한다. 법명은 태허(太虛), 곧 허공이라는 의미였다. 월초선사의 뜻을 받아 만세시위운동을 주도하다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고 지독한 고문을 견뎌냈다. 이후 김성숙은 무산자동맹회와 조선노동공제회에 들어가 독립운동을 벌여나간다. 무산자동맹회는 국내 유일의 사회주의 운동단체, 조선노동공제회는 한국 최초의 전국적인 노동운동단체였다.

1923년 드디어 베이징으로 건너간 김성숙은 아나키스트로 변신하면서 테러 조직 의열단에 입단하고, 일제에 저항하기 위한 ‘협동전선의 필연성’을 외치며 잡지 <혁명>을 발행한다. 리다자오 등 중국 유명 좌파 인사가 필자였고 국내와 시베리아, 캘리포니아와 유럽까지 퍼져나갈 정도로 영향력이 컸지만, 한글을 인쇄하는 시설이 없어 모든 글을 손으로 써 석판 인쇄를 하며 밤을 지새우고 실명의 위기를 겪는 치열한 삶도 재구성했다.

스케일 큰 소설의 구도는 혁명을 위해 하이루펑으로 간 김산과는 달리 상하이를 선택한 김성숙이 조선독립투쟁의 역량 집결을 위해 모든 군사 조직들을 광복군 체제 아래 둘 것을 역설하며 상하이 임시정부 안으로 들어갔다. 소설은 이를 비극의 시작으로 봤다. 그는 이승만의 반소(反蘇) 활동을 격렬하게 비판하며 면직을 요구했지만 결국 좌절되고 훗날 자유당 정권 하에서 간첩의 누명을 쓰는 악연으로 이어졌다.

1945년 조국이 해방되었지만 외세에 의한 해방은 더 가혹한 고통이었다. 해방 조선에서는 이승만 등 친미파가 득세했고 친일파들이 다시 권력을 장악했다. 김성숙은 미군정을 비난했다는 명목으로 수감되었고, 중국에 두고 온 아내 두군혜는 아들들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거리를 전전하다가 밤이 되면 몰래 병실로 들어와 밤을 새웠다. 많은 동지들이 이북으로 건너갔지만, 친소와 친미가 아닌 민족 자주를 열망했던 김성숙은 남한을 선택했다. 쿠데타를 일으킨 군사정권에 의해 재판에 회부되고, 공화당의 요직을 회유받는 정치 도구로 전락한 말년의 김성숙. 그에게 남은 것은 옛 동지들이 지어준 오두막 피우정뿐이었다. 곧 피우정(避雨亭), 비나 겨우 피하는 집에서 1969년 4월 김성숙은 천식을 앓으며 죽어갔다. 아무도 기억하려 하지 않는 혁명가이의 죽음이었다.

지은이 정찬주는 불교적 사유가 짙은 소설과 명상적 산문을 발표해 왔으며, 행원문학상, 동국문학상, 화쟁문화대상 등을 수상했다.

[불교신문2954호/2013년10월19일자]

 

김종찬 기자  kimjc00@ibulgyo.com

아무도 기억하려 하지 않는 이의 죽음
‘운암 김성숙’ 생애 소설로 조명

조선에서 온 붉은 승려

정찬주지음 김영사

 

철저한 자료고증으로 궤적 그려

조국의 독립을 위해 중국 대륙에서 치열하게 혁명 전선에 뛰어든 김성숙, 김산(장지락), 오성륜 등 수많은 조선의 전사들이 있었다. 책은 중국의 1927년 ‘광저우봉기’의 주도자이며 김산의 사상적 스승이었던 ‘조선에서 온 붉은 승려’ 김성숙의 생애를 그린 소설이다.

“내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붉은 승려 김성숙이었다.” 다른 책 <아리랑>에서 혁명가로 잘 그려진 김산이 중국 대륙에서 투쟁했던 조선인들에게서 사상적 뿌리인 김성숙을 그렇게 묘사했다.

책은 반도와 대륙을 넘나드는 거대한 스케일을 보여주며 철저한 자료 고증을 통해 마치 당시 풍운의 무대를 직접 누비는 듯한 현장감을 전해준다. 작가 정찬주의 속도감 넘치는 문체로 조선인 혁명가들의 삶의 굴곡을 세밀하게 포착하면서 주인공인 김성숙 외에도 전설적 혁명가 김산, 거침없는 테러 투쟁으로 일본인들을 두려움에 떨게 한 의열단원 오성륜, ‘인민해방군가’를 작곡하여 중국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천재 음악가 정율성 등 조국의 새벽을 열고자 고군분투했던 항일투쟁가들의 삶이 펼쳐진다. 이들 항일운가들은 가장 적극적인 조선 혁명가들로서 모택동의 운명적 만남, 비밀스러운 막후 실력자 주은래와의 뜨거운 우정, 김성숙과 중국인 아내 두군혜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서로 엉킨다.

작가는 스님 출신의 항일운동가가 남긴 잊혀진 독립운동사를 복원한다. 운암 김성숙의 생애에 대해 ‘아무도 기억하려 하지 않는 자의 죽음’으로 묘사하는 작가는 비운의 주인공을 불운아로 기록한다. 중국 대륙을 누비며 조국의 독립을 위해 생을 바쳤지만 해방된 조국에서 간첩의 누명을 쓰고, 군사재판에 회부되었던 불운아로서, 그가 중국에서 ‘금강산에서 온 붉은 승려’라고 불렸던 과정을 극화시킨 책은 1916년 김성숙이 중국으로의 망명을 결심하고 집을 떠난 것이 시발점이다.

그는 봉천으로 가기 위해 원산, 청진을 거쳐 두만강을 건너려 했지만 국경수비대의 삼엄한 경계에 막혔고, 기회를 엿보던 김성숙은 시절인연에 끌려 용문사에서 불가에 입문한다. 법명은 태허(太虛), 곧 허공이라는 의미였다. 월초선사의 뜻을 받아 만세시위운동을 주도하다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고 지독한 고문을 견뎌냈다. 이후 김성숙은 무산자동맹회와 조선노동공제회에 들어가 독립운동을 벌여나간다. 무산자동맹회는 국내 유일의 사회주의 운동단체, 조선노동공제회는 한국 최초의 전국적인 노동운동단체였다.

1945년 조국이 해방되었지만 외세에 의한 해방은 더 가혹한 고통이었다. 해방 조선에서는 이승만 등 친미파가 득세했고 친일파들이 다시 권력을 장악했다. 김성숙은 미군정을 비난했다는 명목으로 수감되었고, 중국에 두고 온 아내 두군혜는 아들들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거리를 전전하다가 밤이 되면 몰래 병실로 들어와 밤을 새웠다. 많은 동지들이 이북으로 건너갔지만, 친소와 친미가 아닌 민족 자주를 열망했던 김성숙은 남한을 선택했다. 쿠데타를 일으킨 군사정권에 의해 재판에 회부되고, 공화당의 요직을 회유받는 정치 도구로 전락한 말년의 김성숙. 그에게 남은 것은 옛 동지들이 지어준 오두막 피우정뿐이었다. 곧 피우정(避雨亭), 비나 겨우 피하는 집에서 1969년 4월 김성숙은 천식을 앓으며 죽어갔다. 아무도 기억하려 하지 않는 혁명가이의 죽음이었다.

지은이 정찬주는 불교적 사유가 짙은 소설과 명상적 산문을 발표해 왔으며, 행원문학상, 동국문학상, 화쟁문화대상 등을 수상했다.

[불교신문2954호/2013년10월19일자]  김종찬 기자 | kimjc00@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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