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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문닷컴]운암스님,"박정희가 주는 훈장은 싫다"
관리자
조회수 : 2341   |   2011-01-28


서훈을 거부한 운암 스님 일본군 장교 출신의 박정희에게 자신의 독립운동 사실을 인정받는 것을 원치 않아 님 웨일스의 ‘아리랑’에 나오는 김산(본명 장지락)을 공산주의자로 ‘지도’한 승려 출신의 김성숙(金星淑) 선생은 3·1운동에 참가했다가 옥고를 치르고 중국으로 망명, 조선의열단 선전부장을 지냈다.

김구, 김규식과 임정을 조직해 국무위원을 지냈으며 이승만을 공개적으로 성토하고 27년 광동코뮌에 참여한 열혈 혁명가이기도 했다.

해방후 김성숙은 여운형과 함께 좌·우합작에 매진하다가 57년 ‘근로인민당 재건사건’, 58년 ‘진보당 사건’ 등 이승만에게 정치적 보복을 당해 여러번 옥고를 치렀다.

김성숙은 서울 성동구 구의동에 있는 한 동료의 집 마당 귀퉁이에 11평짜리 가건물을 지어 기거했다. 이것도 주변사람이 ‘비나 피하라’고 지어준 것으로 노산 이은상은 이 집에 피우정(避雨亭)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김성숙은 말년에 병마에 시달렸는데 변변한 약은커녕 끼니도 잇기 어려웠다고 한다. 이 노(老)혁명가는 69년 쓸쓸히 죽었지만 일본군 장교 출신의 박정희에게 자신의 독립운동 사실을 인정받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노장스님들께 여주어 보니 월초스님께서 운암 스님을 좋아하셨다고 하더군요. 월초 스님 유언을 보니까, 운암 스님과 운허 스님께 자신의 재산을 반드시 나누어 주라고 부탁하신 귀절이 있습니다.

혜문닷컴 blog.naver.com/doorskyj

*혜문스님 : 대한불교조계종 25교구본사 스님.

(현)문화재제자리찾기 사무총장 조선왕실의궤환수위원회 사무처장 조선왕조실록환수위원회 간사 , 문화재제자리찾기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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