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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인]“민주 세력 ‘새 단결’이 김 전 대통령의 유언”
관리자
조회수 : 2210   |   2009-08-27


이해찬 : 1952년 충남 청양 출생,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민통련 총무국장을 거쳐 평민당에 입당한 뒤 13, 14, 15, 16, 17대 국회의원 역임. 제38대 교육부 장관. 제36대 국무총리. 제3대 운암김성숙기념사업회 회장. 이해찬 전 총리는 지난 20여 년 동안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었던 민주화 동지였다. 두 ‘동지’를 불과 3개월 사이에 잃은 이 전 총리를 8월20일 여의도의 재단법인 광장에서 만났다. 노무현 전 대통령 49재가 지나자마자 김대중 전 대통령까지 서거했다. 우리 역사에서 현재 같은 상황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조선조 말기에 정조 대왕이 서거한 게 1800년이다. 그 후 조선에서는 개혁적인 시기가 없었다. 광복 후에도 친일파들이 날뛰었다. 4·19 직후에 잠시 민주화되었다가 군부독재가 지속되었다. 그러니 지난 209년 중 민주개혁 세력이 그나마 정권을 잡은 시기는 지난 10년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런 10년을 이끌었던 두 분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돌아가셨다. 현 정부의 반역사적 역주행이 두 분의 서거에 큰 영향을 미쳤다. 노 전 대통령에게는 정치 보복과 검찰권 남용으로 직접 영향을 미쳤다. 김 전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서 엄청난 충격을 받았고 장례식 참석으로 인한 물리적 타격도 컸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난 10년은 우리 민주개혁 진영의 이후 발전에 큰 디딤돌이 될 것이다. 문제는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올해 들어 이명박 정부의 대결적 대북정책이나 민주주의 문제 등에 대한 분노를 몇 차례 표출한 바 있다. 입원 전에도 ‘분하고 억울하다’고 말한 것으로 들었다. 지난 6월에 6·15 9주년 행사 마치고 오찬 모임을 할 때였다. 그때 ‘억울하다, 나라가 어려워진다, 안타깝다…’ 이런 말씀들을 절절하게 털어놓으셨다. 그의 입장에서는 어렵고 어렵게 이룩한 민주화, 남북 화해, 경제성장 등이 한꺼번에 무너져내리는 총체적 위기에 대한 걱정이었을 것이다. 이런 총체적 위기를 ‘행동하는 양심으로 다시 바로잡아야 한다’ ‘실천하라’는 이야기도 많이 하셨다. 인상 깊었던 이야기는 ‘정 겁이 나면 담벼락에 대고 소리쳐라’는 것이었다. 1980년대의 말씀인데 20년 만에 다시 사용하셨다. 실천하라? 무엇을 실천하라는 것이었을까. 민주당에 대해서는 ‘기득권 버리고 통합해라’고 강조하셨다. 그날 그 자리에 민주당 정세균 대표도 함께 계셨다. 노무현 전 대통령 측 사람들에겐 ‘노 대통령이 가셨지만 다 함께 힘을 합쳐 잘하는 게 중요하다. 그러면 노 대통령도 가신 것이 아니다’라고 하셨다. 민주 세력이 연대하고 단결하라는 이야기인가. 그렇다. 그걸 강조하셨다. 노 전 대통령 장례 때 김 전 대통령이 정말 슬프게 흐느껴 울었다. 많은 사람이 그 광경을 보고 울컥했다. 노 전 대통령은 6·15 정신을 이어 10·4 정상회담을 이끌어내고, 6자 회담도 더욱 발전적인 틀로 성숙시켰다. 남북 간의 경제교류 협력도 더욱 실질화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런 점을 상당히 높이 평가하고 계셨다. 특히 지난 4월쯤에 남북관계가 급속도로 나빠지자 노 전 대통령과 함께 이를 수습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기도 하셨다. 구체적으로 어떤 계획이었나. (상황이 계속 나빠지면) 두 분이 8월쯤에 만나서 공동 행동을 하자는 구상이었다. 그래서 내게 그런 자리를 준비하라고 하셨다. 두 대통령을 모두 모신 것은 내가 유일하지 않나. 그래서 추진해왔다. 지켜보다가 정 안 되면, 8월쯤에 두 분이 아주 정색을 하고 남북관계 정상화를 촉구하는 공동 회견을 가지는 등 여러 노력을 한다는 계획이었다. 두 분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계셨다. 그러다 지난 5월에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셨다. 그래서 김 전 대통령이 ‘내 반쪽이 무너진 것 같다’고 하신 것이다. 두 대통령은 1960년대 이후 민주화운동 세력을 대표하는 인사들이기도 하다. 그동안 민주개혁 세력 내부의 분열이 극심했던 까닭은 무엇일까. 심지어 옛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은 상대방을 한나라당보다 더 싫어하지 않았나. 정권을 창출하고 나서 우리 역량을 지나치게 높이 평가하고 과신했던 거다. 결국 대선에서 어이없이 패배했고, 힘들게 만들어놓은 여러 제도들이 불과 1년6개월 만에 허물어지고 말았다. 수구 세력들은 ‘잃어버린 10년’이라는데 정조 이래 209년 중 10년이 아쉬운 거다. 그러나 수구 세력이 집권한 이후 남북관계 및 민주주의의 위기가 빚어지고, 경제는 잘할 줄 알았는데, 보이는 것은 부자 감세와 국가재정 파탄뿐이지 않은가. 이런 부분을 국민이 느꼈기 때문에 현재의 조문 행렬이 있는 거다. 국민의 마음은 지금 민주개혁 진영 쪽으로 기울고 있다. 내년 지방선거 때 표로 나타나리라 본다. 심술궂은 질문 하나 드리겠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두 분의 재임기에 빈부격차가 커지고 소외층이 줄어들지 않은 것은 객관적인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10년은 IMF 외환위기를 수습하고 안정화시키는 과정이었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는 미국 차관보(장관도 차관도 아닌)를 만나 ‘달러 빌려달라’ 애걸하고, 또 이를 위해 ‘고용 유연화’ 등 신자유주의적 요구를 모두 들어줘야 했다. 이렇게 외환위기를 수습하다보니 양극화가 심화된 것이다. 그러나 힘겨운 과정을 거쳐 2006 ~2007년 무렵에는 외환위기의 후유증이 어느 정도 정상화된다. 양극화도 더욱 심화되는 것은 막을 수 있을 정도로 기반을 잡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정권이 교체되었고, 아시다시피 상황이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다. 결국 우리 국민이 잘못된 거대 언론에 속고 농락당한 거다. 이 전 총리의 행보에 대해 많은 이가 궁금해하고 있다. 당분간 직접적인 정치활동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들었다. 우선 노무현 대통령 추모기념사업회를 추진할 책임을 맡았다. 9월 하순에 발족할 예정이다. 또한 일정한 기금을 모은 뒤 이에 상응하는 지원금을 정부로부터 받아 ‘노무현 스쿨’이나 기념관을 만들 예정이다. 그리고 친노 세력들을 하나로 묶어 시민정치 활동조직을 엮어낼 생각이다. 이 조직은 시민단체도 정당도 아니다. 선거 때는 투표에 참여하고, 평시에는 언론개혁, 사법개혁, 소비자 운동 등에 적극 참여한다. 새로운 시대에 어울리도록 온·오프라인을 오가며 토론하고 행동하는, 미국의 ‘무브온’(MoveOn) 같은 조직이다. 나와 한명숙 전 총리가 준비 중이고 9월에 발족할 계획이다. 친노 신당을 지지하는지, 반대하는지 해석이 분분하다. 지지하는 것도, 반대하는 것도 아니다. 원래 노무현의 가치를 따르는 지지자들은 분화되어 있었다. 이 같은 전체를 하나의 신당으로 만들 수도 없는 일이고, 민주당으로 통합할 수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노무현의 가치를 따르는 가치 공동체를 만들어서, 그 속에서 가치를 실현해가자는 것이다. 이 가치 공동체가 바로 아까 말했던 시민정치 활동조직이다. 민주당에서 노력할 사람은 그렇게 하고, 신당에서 노력할 사람도 그렇게 하면 된다. 이종태기자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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