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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신문]태허스님 추모제 국립현충원서 ‘거행’
관리자
조회수 : 1926   |   2009-04-20


<사진>지난 10일 서울 국립현충원에서 열린 ‘운암 김성숙 서거 40주기 추모제’ 모습. 태허스님 추모제 국립현충원서 ‘거행’ 기념사업회, 10일 입적40주기 맞아 ‘독립 희망’ 일깨운 스님 뜻 기려 독립운동가이자 임시정부 요인으로 활동한 운암 김성숙(태허스님) 서거 40주기를 맞아 사단법인 운암김성숙선생기념사업회(회장 민성진)는 지난 10일 서울 국립현충원에서 추모제를 봉행했다. 제25교구본사 봉선사, 국가보훈처, 광복회의 후원으로 진행된 이날 추모제에는 봉선자 주지 인묵스님, 신영교 국가보훈처 서울남부지청장 등 사부대중 150여 명이 동참했으며, 인묵스님의 집전으로 염불 및 작법무 공양 등 불교추모의식이 진행됐다. 민성진 회장은 “탄신 111주년, 서거 40주기를 맞는 오늘 국립현충원에서 운암 김성숙 선생을 추모하는 행사가 엄숙하게 봉행되게 된데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며 “일제의 압살에 모두가 어둠 속에서 절망하고 있을 때 떨쳐 일어나 민족에게 독립의 희망을 일깨워준 선생의 뜻을 기리기 위해 기념사업회가 더욱 노력해 가겠다”고 다짐했다. 김영일 광복회장은 승병일 부회장이 대독한 추모사를 통해 “사회가 혼란스럽고 무질서와 부도덕이 횡행하는 시절을 볼 때마다 운암 선생의 올곧은 삶과 기개가 그리워진다”며 “선생의 정신을 되살리고 선생께서 그토록 원하셨던 통일의 염원을 이룩하기 위해 우리 모두 노력해가자”고 말했다. 김동원 상산김씨 대종회장도 “구국의 일념으로 희생하시고 의로운 업적을 남기신 김성숙 선생의 후손으로서 온 국민의 어버이와 같았던 선생의 뜻을 계승하기 위해 모든 종친들이 새롭게 태어나겠다”고 밝혔다. 한편 운암 김성숙(태허스님)은 1898년 평북 철산군에서 태어나 10대 때 양평 용문사에서 출가했다. 이후 남양주 봉선사로 옮겨서 불교 교리를 공부하던 중 당시 민족대표 33인이던 손병희와 불교계 인사인 김법린, 한용운 등과 교류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봉선사 스님들과 함께 시위 운동을 주도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서대문 형무소에서 2년간 옥고를 치렀다. 중국으로 망명한 이후, 임시정부 내무차관과 국무위원으로 활약했다. 독립 후에도 해방정국에서 좌우합작운동을 펼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으며, 해방 이후에는 이념보다는 민족해방을 강조하면서 조국을 통일하기 위해 노력했다. 박정희 정권에 의해 혁신계 인사로 분류돼 반국가행위를 저질렀다는 누명을 쓰고 옥고를 치루기도 했다. 출옥 후 신민당 지도위원으로 있다가 1969년 사망했다. 이후 1982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이 수여됐으며, 2004년 서울 국립현충원 임시정부 요인 묘역에 안장됐다. 엄태규 기자 che11@ibulgyo.com [불교신문 2519호/ 4월2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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