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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붓다]운암항일운동기념관 짓는다
관리자
조회수 : 2583   |   2008-10-16


운암김성숙선생(태허스님)기념사업회는 16일, 경기도 양평군 용문산 일대에 건립되는 운암항일운동기념관 및 불교호국관 조감도를 미디어붓다를 통해 첫 공개했다. 운암항일운동기념관 짓는다 기념사업회, 조감도 첫 공개 출가본사 양평 용문사 부지에 건립 확정 종교인으론 유일 임정 국무위원으로 활동 사단법인 운암김성숙선생기념사업회(회장 민성진)가 경기도 양평군 용문산에 건립하는 ‘운암(태허 스님)항일운동기념관’의 조감도가 완성됐다. 운암김성숙선생기념사업회는 16일, 현재 용문사 소유지인 용문산 기슭에 세워지는 운암기념관의 조감도를 공개하고, 이른 시일 내에 공사를 마무리 짓겠다고 밝혔다. 운암김성숙선생기념사업회는 지난 3년 동안 기념관 건립을 위해 백방의 노력을 기울인 끝에 봉선사 교구 중진회의 등을 거쳐 운암 김성숙(태허 스님)의 출가본사이며 제25교구 봉선사 말사인 양평 용문사 인근 부지에 기념관을 건립하기로 확정지은 바 있다. 운암김성숙선생기념사업회와 봉선사는 “종교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임시정부의 국무위원을 역임했고, 백범과 함께 독립운동의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한 운암 김성숙 선생의 독립정신을 기리는 기념관이 대한민국독립 60여년이나 지난 현재까지도 건립되지 못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는 데 뜻을 모으고 기념관 건립을 추진해왔다. 운암김성숙선생기념관은 불교인 독립운동가 기념관으로는 최초로 국가보훈처의 지원을 받아 건립하는 첫 기념관이다. 특히 불교계는 역사적으로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호국불교를 표방하며 선구적으로 헌신해왔음에도 불교와 관련된 독립운동 유적지는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운암 김성숙 선생(태허 스님)은? 1916년 독립군에 가입하기 위하여 만주에 가려했으나 일본군에게 체포되어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고, 그때 경기도 용문사 스님인 풍곡신원(楓谷信元)선사를 만나서 용문사에서 출가를 하였고, 봉선사 월초 노스님으로부터 성숙(星淑)이란 법명을 받았다. 이후 용문사에서 2년쯤 생활하다가 남양주 봉선사로 옮겨서 불교 교리를 공부했다. 당시 봉선사에 출입이 잦았던 손병희와 불교계인사인 김법린, 한용운 등과 친분이 있었고,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봉선사 스님들과 함께 부평리 일대에 시위운동을 주도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서대문 형무소에서 2년간 옥고를 치렀다. 그 후 중국으로 망명해서 독립운동을 하시어 승려신분으로는 유일하게 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역임하셨으며, 독립 후에도 해방정국에서 좌우합작운동을 펼치는 중요한 몫을 담당했다. 6.25때 서울에 남았다가 공산당 부역혐의로 옥고를 치렀고, 1955년 조봉암 등과 접촉하여 진보당 추진위원회에도 관여했다. 5.16 이후에 이른바 통일사회당 사건으로 다시 옥고를 치르게 되었다. 운암의 일생은 젊어서는 항일무장투쟁으로 일관했고, 해방 후에는 반이승만 정권 운동과 좌우합작 및 조국 통일운동을, 5.16군사정권 이후에는 박정희 군사정권에 반대하는 길을 걸었다. 이러하듯 운암 김성숙 선생의 일생은 불교와 깊은 인연을 가지고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헌신해온 바 ‘운암김성숙선생기념사업회’에서는 이런 운암선생의 정신을 계승 선양하기 위한 장으로 ‘운암항일운동기념관’과 ‘호국 불교관’을 건립하여 민족적 정기를 수호한다는 계획이다. 운암항일운동기념관은 외국인들도 방문하여 대한민국의 독립운동의 숨결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도록 운암 선생의 일대기와 함께 대표적인 독립운동 자료를 전시하는 한편, 내방객들을 위한 문화공간을 확보하여 쉼터와 문화, 교육공간을 함께 제공할 방침이다. 이학종기자 urubell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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