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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닷컴]"월초스님, 독립·불교근대화 운동 주도"
관리자
조회수 : 2535   |   2008-10-13


"월초스님, 독립·불교근대화 운동 주도" 학술회의서 행장·업적 재조명…근대불교 선각자 평가 근대불교 교육의 선구자 월초스님을 재조명하고 업적을 기리는 학술회의가 월초문도회(문장 월운스님)와 남양주 봉선사(주지 인묵스님) 주최로 10일 열렸다. 이날 학술회의에서 기조발제한 신용철 경희대 명예교수는 "한국불교의 근대화와 교종의 본찰, 봉선사의 공헌 -월초스님의 생애와 활동을 중심으로" 논문을 발표했다. 신 교수는 "월초스님은 이미 연로한 자신을 대신해 후학들을 통해 독립 운동과 불교근대화 운동을 주도했다"면서 그 근거로 박용하 스님과 김성숙 스님, 운허스님 등을 집중적으로 육성한 일을 제시했다. 신 교수는 "월초스님이 주지였던봉선사는 당시 일본 경찰에게는 눈의 가시였으며 감시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다"며 "3.1운동 당시 지월스님과 태허스님 등의 주도로 광릉내에서 만세를 부르다가 태허스님이 구속돼 옥고를 치렀고, 1932년 박용하 스님이 만주에서 돌아오자 양주경찰서장은 봉선사를 찾아 월초 스님을 추궁하자 스님은 손상좌인 박용하 스님을 만주에 보내 만행을 다녀온 것이라고 둘러댔다"고 밝혔다. 신 교수는 불교교육의 근대화를 위해 힘쓴 월초스님의 공로 역시 높이 평가했다. 신 교수는 "당시의 매우 시급한 과제였던 인재의 양성을 위해 동국대의 전신인 명진학교를 설립하여 이사장과 교장을 역임했다"면서 "1934년 입적을 앞두고는 유촉으로 사재를 털어 봉선사에 전문 강원을 설립하게 해 관리와 강사를 운허스님에게 맡겼다"고 설명했다. 한동임 수원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는 "한국근대불교사의 홍월초 스님"의 주제 발제를 통해 "대한제국 성립 이후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된 후 조선불교계는 개화파(강대련, 진진응, 김지순, 김구하)와 보수파(나청호, 김용곡, 서학암), 중도파(홍월초, 이보담, 이회광, 김석옹)로 구분할 수 있다"며 1906년 명진학교 설립과 관련한 태도가 그 구분 기준이 된다고 주장했다. "홍월초의 꿈 -그의 교육관에 나타난 민족불교"를 주제로 발표에 나선 김광식 부천대 교수는 "전통 불교학이 멸실되는 지경에서, 근대문명과 근대 불교학이 위세를 부리는 현실에서 홍월초는 역사와 전통이라는 굳건한 나무를 잡은 것"이라며 "입적하는 날까지 불교발전을 위한 고뇌, 고투, 헌신으로 불교교학의 밑거름을 튼튼히 해 주고, 민족불교의 일선에서 보살정신으로 삶의 여정을 걸어갔던 홍월초의 지성, 민족불교 지향을 오늘의 이 시점에서 온고이지신의 정신으로 다시 살피고, 불교사의 범주에 포함시켜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학술대회를 주최한 월초문도회 문장 월운스님(봉선사 조실)은 "조선불교를 대표하는 인물로 우뚝 나서신 분이 바로 홍월초(洪月初) 큰스님"이라며 "일제하에서 어떻게 하면 사찰을 수호하고 우리불교를 지켜내고 키워갈 수 있을까, 명분과 실리를 도모했던 지혜로운 고승이었던 동시에 독립운동가들에게는 큰 울타리가 되어주셨던 분"이라고 평가했다. 박봉영 기자 opyj@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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