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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in뉴스]4월의 독립운동가 김성숙(金星淑)선생 선정
관리자
조회수 : 1635   |   2008-04-01


승려에서 임시정부 요인으로 2008년 03월 31일 (월) 23:16:44 이종승 기자 cninews@hanmail.net 국가보훈처는 광복회·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국권회복과 조선독립을 위해 헌신하신 김성숙 선생을 4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 운암 김성숙 선생은 1898년 3월 평안북도 서림면 강암동에서 태어났으며 1916년 경기도 남양주군 봉선사의 승려로 있으며 불교 교리 공부 후 근대 사회과학에 눈떴다. 선생은 1919년 3월 봉선사에 있을 때 같은 승려인 이순재, 김성로 등과 함께 파리강화회의에서 12개국이 독립국이 될 것을 결정하였으므로 조선도 열심히 독립운동을 하면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내용의 격문을 살포한 사건으로 징역6월형의 옥고를 치렀다. 출옥한 그는 전국각지를 돌아다니며 독립정신을 고취하였으며 1920년에 무산자동맹노동공제회에 참석하여 충북괴산에서 일어난 소작쟁의의 진상을 서울 본회 및 각 지방 지회에 알리는 등 적극적인 항일민족운동을 전개하였다. 1923년에는 불교유학생으로 중국의 북경으로 건너가 조선의열단에서 승려신분을 벗어나 선전부장으로 활동하였고 1928년에는 재중국조선청년총연맹을 조직하여 한국인 청년들에게 무력적인 행동으로만 조국광복을 위한 항일투쟁을 할 수 있다며 적극적인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1937년 현정경, 박건웅 등과 함께 조선민족해방동맹을 결성하였고 좌익진영단체와 연결 조선민족전선연맹을 조직하여 선전부장으로 활동하였다. 이듬해 광복진영의 9개 단체는 광복군에 편입되고, 그가 참여하였던 민족전선의 네 단체는 조선민족의용대를 조성하여 간부로 활동하던 중 1942년에는 임시정부의 내무차장이 되었다. 1943년 4월 임시정부내 선전부가 설치되었고 이에 그는 조소앙, 신익희 등 14명과 함께 선전계획의 수립, 선전진행 방침에 관한 사항 등을 의결하는 선전위원으로 임명되었다. 임시정부의 국무위원으로 활동하던 그는 1945년 8월15일 일본의 항복으로 그해 12월 1일 같은 임시정부 요인이었던 홍진,조성환,신익희 등과 함께 귀국하였다. 광복 후에는 혁신정당을 조직하여 정치인으로 활동하다가 1969년에 별세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82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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