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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안]역사의 오명을 벗기 위하여
관리자
조회수 : 2064   |   2007-08-15


광복 62돌, 친일 반민족 행위자 소유 토지의 국가 귀속 결정을 환영해 마지 않는다 친일파가 축적한 재산이 국가에 속속 귀속되고 있다. 지난 5월 이완용과 송병준 등 친일 반민족 행위자 9명이 소유한 154필지 25만5천㎡의 국가 귀속 결정에 이어 이번에는 일제에 비행기를 헌납했던 민영휘, 3·1운동을 무력으로 탄압했던 박중양 등이 소유했던 156필지 102만㎡에 대해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가 국가 귀속 결정을 내렸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환영해 마지않는다. 속이 다 후련하다. 서구 실존주의의 문을 연 20세기의 대표적인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가 살아생전에 줄기차게 주장한 것이 있다. 1948년에 단독정부를 수립한 대한민국은 하나의 국가로서 정체성을 인정할 수 없지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국가로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로서는 자존심이 무진장 상하는 말이지만 그 이유를 들어보면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한다. 북한은 ‘북조선노동당’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친일파를 철저하게 배제하였다. 친일파의 재산을 몰수한 것은 물론 과감하게 숙청하고 추방하였다. 그런데 남한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1948년 제헌국회 내에 두었던 특별위원회인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줄여서 ‘반민특위’라 부름)는 이승만 정권의 앞잡이 노릇을 한 경찰의 방해공작으로 친일파의 죄상을 파헤치기도 전인 1949년 8월 22일, ‘반민족행위자 특별조사위원회 폐지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어 죄상을 파헤치기는커녕 친일파 어느 한 사람도 단죄하지 못한 채 해산하고 말았다. 7명에게 실형을 신고하긴 했지만 이들도 재심청구 등의 방법으로 금방 풀려났던 것이다. 이후 친일파는 경찰조직, 행정관료 어느 분야 할 것 없이 고스란히 등용이 되었다. 일제 강점기 때보다 더 출세한 친일파가 많았다. 먼 프랑스에도 이런 소식이 전해졌던가 보다. 사르트르가 사회주의자여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한반도에서 진행되는 이런 일들을 보고 그는 한 쪽 편을 드는 발언을 수시로 했다. 식민지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정치체제로 출범할 때 과거에 식민지 지배계급에 빌붙어 반민족행위를 한 사람은 반드시 처벌했음을 세계사는 말해준다. 인간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동족을 고문했던 사람들이 전혀 벌을 받지 않은 나라, 오히려 그 사회의 상층부로 그대로 남은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무이하다고 한다. 반민특위 조사가 정권의 비호로 중단된 부끄러운 사실은 교과서에 기록되어야 한다. 다시는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역사의 교훈을 후손에게 전해주기 위해서이다. 다행히도 5월의 친일파 재산 1차 환수에 이어 8월 13일의 2차 환수로 말미암아 우리는 이제 비로소 민족정기를 바로잡을 수 있게 되었다. 잘못 흘러온 역사를 바로잡을 수 있게 되었다. 여러 친일파 후손들이 이의신청에 나서고 있고, 국가귀속 결정 뒤에는 행정심판과 행정소송을 제기할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몇 대째 종중의 재산으로 대물림되어온 땅이라고 하지만 이런 재산의 취득 과정을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친일파의 후손은 자기 조상이 일제 강점기 때 어떤 식으로 그 넓은 땅을 소유하게 되었는지 알고 있어야 한다. 친일행위를 한 대가로 일제가 하사한 것도 있었지만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고 있던 친일파인지라 지주들한테 시세에 반도 못 미치는 돈을 내놓으며 반강제적으로 가져간 땅들이다. 또한 동족이 피땀으로 거둬들인 곡식이며 재산을 빼앗아 그 돈으로 구입한 땅들이다. 국가에 귀속되는 것이 당연한 일이므로 이의신청에 나서지 말았으면 좋겠다. 운암 김성숙 선생 항일운동 사적지 대학생 중국 탐방단이 지난 12일, 마지막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가 있던 중경을 방문했다고 한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40년, 중일전쟁의 여파로 수도를 중경으로 옮긴 장재석 국민당 정부와 함께 중경으로 왔지만 있을 곳이 마땅치 않아 중경에서도 네 번이나 청사를 옮겼다고 한다. 나라 잃은 설움을 곱씹으며 이역만리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했던 임정요원들이 친일파 재산 환수 소식을 듣고 저승에서 이제 비로소 눈을 감을 것이다. 오늘은 62돌을 맞는 광복절이다. 국가보훈처가 이 날을 맞아 290명에게 훈·포장을 수여한다. 이 또한 환영해 마지않을 일이다. 3·1운동을 주도한 후 중국으로 망명, 대한독립단 유격대를 훈련시켜 국내 진공작전을 전개한 이자해 선생, 한인사회당 선전부장으로 활동하다가 9년여 옥살이를 한 전일 선생, 평원고무공장 파업을 주도하다 체포되어 단식투쟁 끝에 숨진 강주룡 선생 등이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게 되었다. 우리나라가 ‘친일파 등용’이라는 역사의 오명을 조금이나마 벗게 되었음을 다행이라 생각하며 광복 62돌을 보내야겠다.[이승하 시인/중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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