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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중국 거주 후손들이 전한 `독립운동가" 아버지
관리자
조회수 : 2044   |   2007-08-14


운암 김성숙의 아들 두젠씨 “함께 연 날리던 자상한 분” ‘아리랑’ 주인공 김산 아들 가오잉광씨 “아버지 재조명에 감사” 한국 대학생들에 남북통일의 주역이 되달라 당부 “아버지는 틈만 나면 자식들과 같이 있길 원하던 자상한 분이었습니다”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마음 속에 남은 아버지의 모습은 어떨까. 일제강점기에 항일투사로서 일본군과 경찰에 쫓기고 독립운동을 이유로 자주 집을 비웠던 아버지. 그러나 승려 출신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지낸 운암 김성숙(1898∼1969)의 아들 두젠(杜鍵.74)씨는 마음이 따뜻하고 자식을 아끼던 아버지를 기억하고 있다. 1945년 8월 광복과 함께 한국으로 떠난 아버지 운암과 12살 때까지 같이 살았다는 그는 14일 “아버지는 우리에게 수영을 가르쳐주고 연도 함께 날리던 분이었다. 또 재미있는 옛날 이야기도 자주 들려주셨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오후 중국 베이징(北京)의 한 호텔에서 지난 7일부터 중국 상하이(上海)와 난징(南京), 광저우(廣州), 충칭(重慶) 등을 돌며 독립운동 중국 사적지를 탐방하는 대학생들에게 “아버지가 비록 자식들과 함께 한 시간은 적었지만 같이 있는 순간만큼은 최선을 다했다”고 전했다. 두젠씨는 일제강점기에 중국으로 망명해 항일 투쟁을 벌이던 운암이 당시 광저우(廣州)에서 만난 중국의 여성혁명가 두쥔후이(杜君慧.1904∼1981)와 사이에서 낳은 둘째 아들로 중국 중앙미술학원 유화학부 부학장을 지냈다. 그는 6ㆍ25 전쟁으로 아버지를 다시는 만나지 못하게 됐고 성을 김씨에서 어머니의 성인 두씨로 바꿨다고 밝혔다. 그는 아버지와 헤어진 12살 이후 가정형편이 어려워 힘들게 지냈지만 한국으로 떠난 아버지에 대한 원망은 없다고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는 “아버지가 무사하신지, 건강하신지 걱정이 됐을 뿐 부인과 자식을 버리고 떠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이해하기에 아버지를 탓한 적은 없었다”고 했다. 두젠씨는 경제적 도움 등 한국 정부의 지원은 전혀 없었지만 이는 분단이라는 가슴 아픈 조국의 상황 때문인 것으로 이해한다고 말했다. 그는 “민족주의 좌파계열로 독립운동을 하신 아버지를 (분단이라는 특별한 상황에 처한) 한국이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면서 “한국 정부에 대해 특별히 (나쁜) 감정은 없다”며 미소를 지었다. 두젠씨는 자신을 “절반은 한국인”이라며 “조국인 한국을 잘 모르고 한국어도 할줄 모르며 한국을 위해 한 일이 없어 부끄럽다. 그러나 한국의 발전 소식을 들으면 내 일처럼 기쁘다”고 힘주어 말했다. 광복 이후 통일사회당 정치위원 등으로 활동한 운암은 1961년 5월 군사혁명세력에 의해 반국가행위로 기소되는 등 힘든 나날을 보내다 1969년 타계했으며 1982년에야 비로소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다. 이날 행사에는 님 웨일즈의 ‘아리랑’ 주인공 김산(본명 장지락.1905~1938)의 아들 가오잉광(高永光.70)씨도 참석해 “ 한국에서 지금이라도 아버지를 인정해줘서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두젠씨와 가오잉광씨는 자신들을 찾은 대학생 탐방단에게 “항일독립운동의 역사와 독립운동가들에 대해 공부를 많이 하고 우리 시대의 남은 숙제인 남북통일을 이룩하는 데 기여하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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