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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신문]탐방단, 광저우에서 운암 사상과 사랑을 만나다
관리자
조회수 : 2294   |   2007-08-13


10일 중산대학·광주기의열사능원 방문 기념사업회, 2010년 기념관 건립 예정 8월 7일 운암 김성숙(태허 스님) 선생의 중국 항일운동 사적지 탐방에 나선 ‘제2기 대학생 탐방단(단장 남기형, 이하 탐방단)’이 탐방 4일 째인 8월 10일 중국의 1차 국공합작의 중심지였던 광저우를 방문해 운암 김성숙 선생의 독립운동 발자취를 더듬었다. 탐방단은 태풍의 영향으로 아침부터 내리던 빗줄기에 우비를 입고 먼저 민족시인 이육사가 활동했던 황포군관학교로 향했다. 1924년 6월 장개석을 교장으로 광저우 장주도 황포에 설립됐던 황포군관학교는 의열단 간부와 한인청년들 73명의 군사훈련 장소였다. 실제 황포군관학교 안내책자에는 이곳에서 교관 생활을 했던 양령의 사진과 기록이 남아있었다. 탐방단은 이어 잊혀져가는 애국지사들의 흔적들이 위로했던 빗줄기를 뒤로 하고 1926년 태허 스님이 재학했던 중산대학(당시 광동대학)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중산대학은 1924년 1월 중국 국민당과 공산당의 합작과 함께 국민혁명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대학으로 태허 스님이 정치학을 공부하며 정신적으로 독립운동의 사상을 재무장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태허 스님은 이곳에서 첫 여자 입학생이던 두군혜 여사를 만나 사랑을 나누고, 독립운동을 전개했었다. 태허 스님의 모교인 중산대학에는 오는 2010년 7층 규모의 ‘중산대학성숙군혜기념관’이 들어설 예정이다. 충북대 사학과 박걸순 교수는 “운암 김성숙 선생님은 중산대학을 다니며 고아동 지역 300여 명의 한인 청년들을 규합, 유학한국혁명청년회를 조직해 기관지 ‘혁명운동’을 창간하고 주필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며 “장개석이 국공합작을 깨는 ‘반공쿠데타’를 일으켜 공산당을 탄압할 때 두군혜 여사와 중산대학에서 한인 학생들에게 중국인 옷을 입혀 탈출을 시켰던 분이 운암 김성숙 선생님이며 그는 광저우에서 민국일보 기자와 중산대 초빙교수직을 역임했다”고 설명했다. 탐방단은 이날 중산대학에 앞서 광주기의열사능원을 찾아 1927년 장개석의 공산당 탄압에 희생된 한인대학생 200여 명의 넋을 기렸다. 민족주의 좌파 계열인 태허 스님은 당시 독립운동 노선을 공산당과 함께하며 중대규모의 공산당 제2영 제5련의 책임자로 한인대학생과 국민당과 치열하게 맞서기도 했다. 특히 탐방단은 안내책자에만 나오던 ‘중조인민혈의정(中朝人民血誼亭)’을 찾아 묵념으로 그들의 뜻을 되새겼다. 국민대 국사학과 이정현 씨는 “운암 김성숙 선생님이 항일운동사에서 이렇게 큰 역할을 했던 분인 줄 정말 몰랐다”며 “민족주의 우파 계열의 김구 선생님은 많이 알려진 반면 좌파 계열이었던 운암 김성숙 선생님에 대한 사상적인 조명이 다시금 이뤄졌으면 한다”고 전했다. 한편 탐방단은 8월 11일 계림으로 이동해 조선의용대 본부 자리를 둘러보고 12일부터 중경의 민족혁명단 조선의용대 본부, 광복군 총사령부 옛터, 태허 스님과 김산이 처음만나 조국독립을 위해 뜻을 모았던 중화성경회 구지 등을 탐방할 예정이다. 광저우=최호승 기자 sshoutoo@beopbo.com 913호 [2007-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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