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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운암 김성숙 기념학술대회 개최
관리자
조회수 : 2336   |   2007-08-01


민족지도자 운암 김성숙 (서울=연합뉴스) 김승욱 기자 = 님 웨일스의 소설 "아리랑"에 등장하는 "금강산의 붉은 승려"의 실제 모델이자 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지낸 민족지도자 운암 김성숙(1898-1969)의 삶을 되돌아보는 학술대회가 1일 동국대 원흥관에서 열렸다. 운암김성숙선생기념사업회(최장 최문성)가 주최한 학술대회에는 국민대 손염홍 교수와 국사편찬위원회 김광재 편사연구사, 한상도 건국대 교수 등이 참석해 1920∼1940년대 운암의 항일독립운동을 10년 단위로 나눠 조명했다. 1920년대 중국에서 펼친 운암의 사회주의운동은 손염홍 교수가 고찰했다. 운암은 이 시기에 민국대학과 중산대학에서 정치경제학을 공부했으며 학생운동과 의열단운동 등에 참여했다. 손 교수는 "1920년대 운암은 이론적 소양을 갖추고 각 국의 혁명가와 교류했다"며 "이 시기의 활동을 통해 운암은 훗날 민족운동의 협동전선을 형성하는 인적 기반을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김광재 연구사는 1930년대의 항일운동을 조명했다. 운암은 1927년 중국공산당원으로 광주봉기에 참여했다 실패를 맛봤으며 이후 1934년까지 중국공산당이나 한인독립운동진영과 거리를 두고 저술활동에 몰두했다. 김 연구사는 "운암은 이 시기를 통해 좌경모험주의 노선을 반성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했다"며 "이후 계급혁명보다 민족혁명을 우선하는 이른바 "민족적 공산주의자"들을 결집해 조선민족해방동맹을 결성하는 계기가 됐다"고 분석했다. 한상도 건국대 교수는 1940년대 김성숙이 중경 임시정부에 참여해 벌인 활동과 정치사상을 검토했다. 김성숙은 1940년대 초 임시정부 내무부 차장과 선전부 선전위원, 국무위원 등을 맡았다. 당시 김성숙은 "맹렬한 반소(反蘇)활동을 벌여 소련이 임정에 적대적으로 돌변하는 화를 자초했다"며 이승만 주미외교위원부 위원장의 외교활동을 탄핵했다. 이는 광복 후 김성숙이 집권세력의 견제와 핍박을 받는 이유가 됐다. 한상도 교수는 이를 두고 "한 진보적 민족주의자의 전망과 예견이 "기회주의자", "진짜 빨갱이"라는 낙인에 쓰러졌다"며 "그것은 김성숙 한 사람의 고뇌에 국한된 사실이 아니고 진보적 민족주의노선의 파탄을 의미했다"고 평가했다. 이날 학술대회에는 김상기 한국근현대사학회장, 김국주 광복회 회장, 이동춘 서울지방보훈청장 등이 참석해 축사했다. kind3@yna.co.kr (끝) <모바일로 보는 연합뉴스 7070+NATE/ⓝ/ez-i>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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