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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신문]출옥 후 봉선사 월초 화상을 찾다
관리자
조회수 : 2441   |   2007-05-30


독립운동·불경공부 병행 의지를 밝히고 허락 받아 뜻하지 않은 가출옥 상태로 옥문을 나서던 성숙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어리둥절해졌다. 성숙의 출옥 소식을 전해들은 청년들이 모셔가겠다면서 성숙을 기다리고 있었다. 만해 스님과 김법린을 통해 알게 된 청년들이 성숙의 출옥을 환영하기 위해 모인 것이다. 그렇게 해서 청년들을 따라 간 종로 3가의 한 중국 음식점에서 열린 출옥 환영회는 성숙의 생일잔치가 되었다. 성숙이 출옥해서 나오니 1년 사이에 밖의 환경도 많이 변해 있었다. 감옥에서 김사국 등을 만나면서 처음 알게 된 사회주의 사상이 이미 널리 퍼져 있었다. 중국이나 소련으로 나갔던 사람들 중 상당수가 비밀리에 입국해서 사회주의 활동을 하고 있었고, 성숙도 감옥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으로 인해 곧 그들을 만나게 되었다. 감옥에서 만났던 김사국은 공산주의자이기보다는 민족주의자였다. 감옥에서도 같이 있었고 출옥 후에도 자주 만나면서 서로를 잘 알게 되었다. 김사국은 한문을 많이 알았고, 무엇보다 여섯 살 위였던 그가 한 때 금강산에 들어가 있으면서 불교를 접했던 일이 있었기에 둘은 더욱 가까워질 수 있었다. 김사국을 비롯해 당시 사회주의 사상을 전하던 인물들을 알면서 자연스럽게 모스크바나 일본에서 출판된 책들을 접하게 되었고, 함께 어울리면서 더 많은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그렇다고 사회주의 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아니었다. 성숙은 출옥 후에 얼마 동안을 그렇게 밖의 사람들과 만나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을 꾸다가 봉선사로 향했다. 월초 화상을 만나 인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봉선사에 도착하니 성숙이 올 것을 알고 있었는지 월초 화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예전이 보이던 환한 웃음이 아니라 무덤덤한 표정으로 성숙을 맞은 화상은 제자가 예를 갖추고 나자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래 이제부터 어떻게 할 생각이냐.” 성숙은 잠시 움찔했다. 그동안의 안부를 먼저 묻겠거니 생각하고 있었는데, 대뜸 이제 어떻게 할 것이냐고 향후 거취를 묻는데 당황했던 것이다. 성숙이 침묵하자 화상이 조금은 부드러워진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내가 전에도 말했지만, 독립운동이라는 것이 총칼을 들고 무력을 사용하는 것만은 아니다. 훌륭한 스님이 되어 나라 잃은 백성들에게 가르침을 전하고 의식을 일깨우는 것 또한 독립운동이다. 어찌 밖으로만 나가려 하느냐.” 목소리는 낮았지만 준엄했다. 그렇다고 어물쩍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화상의 말이 끝나자 잠시 고개를 떨구었던 성숙은 드디어 화상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말문을 열었다. “스님, 세상은 아주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그 세상에서 사람들과 살을 비비면서 살고 싶습니다. 스님께서 허락해 주시면 그 인연의 끈을 놓지 않고 불경공부를 하고 싶습니다.” 성숙은 독립운동에 직접 참여하겠다는 자신의 의지를 꺽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스님으로서의 공부도 함께 하겠다는 뜻을 확고하게 밝혔다. 둘 다 진심이었다. 성숙은 용문사에서 풍곡신원 스님에게 불교를 배우고, 봉선사로 옮겨와 강원교육을 받으면서 이미 속까지 스님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부처님 가르침 속에 세상살이의 방법이 담겨 있음도 알고 있었다. 한동안 말없이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하던 월초 화상이 드디어 성숙을 향해 환한 웃음을 지었다. “네 뜻이 그렇다면 그렇게 해라. 다만 불경공부에 게으름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조건부 허락인 셈이었다. sjs88@beopbo.com 903호 [2007-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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