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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신문]-[운암김성숙]-8. 득도 8개월만에 사미과를 수료하다
관리자
조회수 : 2488   |   2007-03-05
8. 득도 8개월만에 사미과를 수료하다

1917년 봉선사 창화강원에서
월초 스님에게 졸업증서 받아
본사행 거부…용문사서 수학

<사진설명>1917년 받은 사미과 졸업증서.

성숙의 스승인 풍곡 신원 스님의 인품은 도둑 떼를 참회시켜 선량한 불자로 만든 것뿐만 아니라, 회암사 주지로 있을 때 사람들을 대하는 데서도 잘 엿볼 수 있다. 회암사는 사내 대중들이 직접 농사를 짓는 땅이 논 열 다섯 마지기 정도여서 살림살이가 그리 넉넉하지 못했다. 대중들이 양식을 아껴서 먹으면 겨우 1년을 먹을 수 있을 정도였으나, 인심 좋은 풍곡 스님 덕분에 석달이면 양식이 동나기 일쑤였다.

풍곡 스님이 인심 좋다는 소문이 나면서 여기 저기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았고, 스님은 그럴 때마다 양식을 주거나 쌀을 팔아 용돈을 만들어 주었다. 주머니에 있는 것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아낌없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집어주었던 스님의 인품 덕분에 사찰 대중들은 늘 먹거리를 걱정해야 했고, 반면에 인동의 주민들은 잠시나마 배고픔을 달랠 수 있었다.

그런 풍곡 스님은 공부 배우는 속도가 남달리 빨랐던 성숙을 보면서 그저 흐뭇했다. “저 아이가 공부를 마치면 절 집에서 큰 일을 할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렇게 스승에게 묻고 또 물으며 공부에 열중한 성숙은 득도식을 갖고 공식적으로 불가에 입문한지 불과 8개월만에 사미과정을 마치게 되었다.

사미공부 과정을 마친 성숙은 대정 6년, 그러니까 우리나이로 20세 때인 1917년 7월 15일 경기도 종교대본산 봉선사 주지 홍월초 화상으로부터 본사전문창화강원(本寺專門彰華講院) 사미과 수료를 인정받는 졸업증서를 받았다. 1917년 당시 본사전문강원은 일제의 영향을 받고 있는 교육과정에서 지방학림에 해당하는 교육기관이었다.

봉선사에서 불교전문강원을 운영한 것은 1927년 월초 화상이 교육사업의 일환으로 홍법강원(弘法講院)이라는 불교전문강원을 개설하고 안진호 스님을 강사로 모셨던 이후라고 할 수 있으나, 성숙이 봉선사 말사인 용문사에 머물고 있던 1917년 당시에도 창화강원이라는 전문강원이 분명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성숙은 이 창화강원 사미과의 첫 졸업생이 되었다.

성숙은 사미과 졸업증서를 받은 이후에도 용문사에서 공부를 계속했다. 그러던 중 그해 가을 어느 날 봉선사를 찾은 풍곡 스님은 자신의 스승인 월초 화상에게 제자 성숙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스님, 쓸만한 물건이 하나 있습니다”하고 풍곡 스님이 운을 떼자, 월초 스님은 “지난 여름에 사미과 졸업증을 받은 그 아이 말이냐”하고 되물었다. 월초 스님의 말을 들은 풍곡 스님이 “아이의 재능이 아주 특별합니다. 한문은 거의 통달했다고 할 수 있을 만한 수준이고, 불경을 배우는 것도 남다릅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오랫동안 데리고 있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 아이는 본래 독립운동을 꿈꾸고 고향을 떠났다가 소승을 만나 이리로 오게 됐는데, 지금도 가슴속에 나라의 독립을 생각하는 뜨거운 피가 끓고 있는 게 보입니다.”하면서 알 듯 모를 듯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풍곡 스님의 말처럼 성숙은 시시때때로 독립운동에 목숨을 건 만주벌판 독립군들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고는 했다. 불경을 공부하다가도 그런 생각이 들 때면 곁에 누가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한참씩이나 독립운동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펴곤 했다. 풍곡 스님은 그런 성숙의 모습을 놓치지 않고 다 보고 있었던 것이다.

월초 스님은 자신이 쓸만한 재목들을 아끼는 것처럼, 지금 자신의 앞에서 제자를 애틋하게 생각하고 있는 풍곡 스님의 마음을 읽었다. 그리고는 풍곡 스님에게 “그 아이를 이곳 봉선사로 보내서 공부시키는 것이 어떻겠느냐”하고 제안했다. 풍곡 스님은 인재를 아끼는 월초 화상의 진면목을 잘 알고 있던 터라 주저 없이 “그렇게 하겠습니다. 화상께서 잘 거두어 주시면 우리 불교를 위해 크게 쓸만한 재목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하고는 성숙을 봉선사로 보내 공부시킬 결심을 했다.

용문사로 돌아온 풍곡 스님은 성숙을 불러 앉혀 놓고는 “내 이제 더는 능력이 없어 너를 봉선사로 보내려 하는데 니 생각은 어떠냐”고 물었다. 그러나 성숙은 “저는 스님 곁에 더 있으면서 공부하고 싶습니다”하고는 봉선사로 가기를 꺼렸다.
 
sjs88@beopbo.com 


891호 [2007-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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