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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신문]-[운암김성숙]-4. 만주 봉천 신흥학교 찾아 길을 나서다
관리자
조회수 : 2730   |   2007-01-29
4. 만주 봉천 신흥학교 찾아 길을 나서다
기사등록일 [2007년 01월 30일 화요일]
 

삼촌에게 독립군 활약 듣고
독립운동 결심…1916년 봄
갓 결혼한 부인 두고 집 떠나

한일합방이 되고 나서 성숙이 할아버지에게 한문을 배우고 있던 그 시절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중국, 러시아 등 주변 국가들의 정세도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고 있었다. 중국에서는 손문이 신해혁명을 일으켜서 청조(淸朝)를 무너뜨렸고, 1914년에는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그리고 러시아에서는 레닌이 공산주의 국가를 세우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을 때였다.

성숙이 살던 철산의 산간벽지에도 신문이 들어왔기 때문에 그런 소식들을 알 수 있었고, 어느덧 열 여섯 살이 된 성숙은 주변정세를 제대로 다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그런 소식을 접할 때마다 가슴이 뛰었다. 공화주의니 공산주의니 하는 무슨 무슨 주의에 대한 동경이 아니라, 나라를 빼앗긴 설움에 젖어있던 시절이었기에 손문이나 레닌 같은 인물들이 그저 위대하게 보였던 것이다.

그러던 와중에 독립군으로 활약 중이던 집안 삼촌을 만난 것이다. 삼촌을 만난 그 자체로 성숙은 감개무량했다. 삼촌을 만난 성숙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손문이나 레닌에 대한 것부터 우리 독립군에 대한 이야기까지 묻기 시작했고, 삼촌은 성숙의 물음에 하나 하나 자세하게 일러주었다.

만주나 블라디보스토크에 가면 우라니라 혁명가들이 있다는 사실도 알려주었고, 만주와 연해주 일대에서 우리 혁명가들이 독립학교와 독립군관학교 그리고 독립단을 세워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도 전해주었다. 성숙은 삼촌이 들려주는 그런 사실들에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는 혼자 속으로 “그럼 그렇지, 우리나라에 어찌 혁명가들이 없겠는가. 손문이나 레닌이 아무리 훌륭하다고 해도 우리 혁명가들에게 비할 수 있겠는가. 이제부터 우리 혁명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제대로 알아야겠다”고 결심했다.

독립군이 되겠다는 꿈을 키워오던 성숙의 혈기에 불을 지핀 삼촌은 대한제국 때 일본인 고문단이 훈련시킨 군대에서 정위(오늘날의 대위)를 했었다. 삼촌은 1907년 대한제국의 군이 일제에 의해 해산되자 나라의 권리를 되찾아야겠다는 각오로 만주로 망명해서 독립군이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만주를 누비며 독립군으로 활약하던 중에 잠시 고향에 들렀던 것인데, 성숙은 거기에서 운 좋게도 그 삼촌을 만나서 이런 꿈같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삼촌은 자신의 활동거점이 신의주 지방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독립군의 조직과정과 일본 놈들을 상대로 싸우는 활약상을 생생하게 들려주었다. 대한독립학교를 다니면서 독립군의 꿈을 키웠던 성숙은 그렇지 않아도 할아버지 밑에서 글공부만 하고 아버지를 도와 들일을 하면서 속에서 끓는 피를 억제하기가 어려웠는데, 진짜 독립군을 이렇게 만나고 보니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하루라도 빨리 독립군 대열에 합류해서 독립운동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어른들은 혹시라도 집안의 대를 이을 성숙이 제 생각대로 훌쩍 집을 떠나 독립군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성숙의 혼례를 서두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후에 성숙도 평소 알고 있던 인동의 정씨 집안 처자를 신부감으로 낙점해 선을 보게 했다. 어려서부터 할아버지나 아버지에게 충효를 배웠던 성숙은 어른들이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혼사를 서두르는 것이 마땅치 않았지만 이를 뿌리치지 못했다. 그렇게 정씨 집안 처자와 선을 보고 나서 얼마 후에 양가의 합의에 따라 혼례를 치렀다. 가난했던 시절이라 혼례 절차도 간소했다.

열 일곱의 나이에 정씨 부인을 아내로 맞아 한 가정의 가장이 된 성숙은 잠시 머뭇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자신이 생계를 책임져야 할 식솔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왜놈들의 압박, 그리고 왜순사와 헌병보조원놈들의 행패는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그때마다 분노가 쌓였다. 성숙은 자신의 집 뿐만 아니라 이 동네 저 동네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행패를 부리는 왜놈들을 보면서 도저히 더는 그들의 행태를 그냥 지켜볼 수 없었다.

집안 어른들과 이제 갓 시집온 부인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있었지만, 만주로 가서 독립군이 되겠다는 성숙의 결심은 더욱 견고해졌다. ‘가자 만주로! 참가하자 독립군!’이렇게 마음 먹고 굳게 결심을 하고 나니 더 이상 다른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성숙의 머릿속은 오로지 삼촌에게서 들었던, 독립군을 양성한다는 신흥학교 생각으로 가득했다.

1916년 봄, 마침내 성숙은 독립군이 되겠다는 결연한 각오로  만주 봉천을 향해 집을 나섰다. 

sjs88@beopbo.com 


887호 [2007-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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