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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신문] 운암은 중도사상 지닌 혁신계 운동가 삶과 사상 조명하고 알리는게 우리몫
관리자
조회수 : 3203   |   2006-08-22


운암은 중도사상 지닌 혁신계 운동가 삶과 사상 조명하고 알리는게 우리몫 태허 스님 항일사적지 탐방단 대담 스님 출신으로는 유일하게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지냈던 태허 스님의 항일 사적지 탐방에 나섰던 ‘제1기 운암 김성숙 항일운동 사적지 중국 탐방단’이 8박 9일간의 대장정을 마치고 8월 15일 귀국했다. 본지는 항일사적지 탐방길에 올랐던 탐방단 51명 가운데 탐방단 학생대표 류지훈 씨, 탐방단 사전 모임을 주도했던 염지현 씨, 불교카페에서 활동중인 윤선아 씨 등 3명을 초청, 이들이 생각하는 운암 김성숙의 삶과 사상 그리고 항일운동 사적지를 돌아본 소감을 들어보았다. 편집자 항일운동 사적지 탐방 소감을 포괄적으로 설명한다면. 류지훈 : 운암 김성숙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었다. 탐방단에 선정된 이후 아르바이트를 중단하고 운암 선생님에 대한 정보가 담긴 책이나 인터넷을 통해 조금씩 알게 됐다. 학교와 학과, 지역, 연령이 각기 다른 51명의 학생들이 모였는데 운암 선생에 대한 이해 정도가 대부분 비슷한 상황이었다. 사실 탐방을 마치고 나서 더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운암 선생님 뿐만 아니라 알려지지 않은 항일운동가들이 상당수 존재한다는 사실에 놀랐다. 이번 탐방을 계기로 더 넓게 생각하고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됐다. 윤선아 : 불교계가 우리 나라에서 차지하는 영향력이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운암 김성숙에 대한 홍보가 전무하다시피 한 사실에 놀랐다. 사실 나 역시 운암이 누구인지 잘 몰랐었다. 탐방기간 중에는 독립운동가들의 활동 무대가 대부분 사라져가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고 서글펐다. 한꺼번에 많은 것을 이룰 수는 없겠지만 조금씩이라도 준비해서, 우파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게 소외 받았던 운암을 비롯한 좌파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발굴에 정부가 관심을 기울였으면 하는 생각이다. 염지현 : 아버지가 역사학자인데 운암 선생에 대해서는 김산의 정신적 스승이라는 정도만 알고 있을 정도로 운암은 가려졌던 인물이었다. 독립운동 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하면 30대가 잘 산다고 하지 않았나. 이데올리기가 다르다는 이유로 독립운동을 했던 것까지 모두 묻히는 것은 잘못된 일임에 분명하다. 우리의 근현대사에서 이들의 삶은 반드시 재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한중수교 이후에 중국이 어느 정도의 성의는 보였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많은 곳이 사라지고 있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고,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탐방단원들 대부분이 운암에 대해 잘 몰랐던 것 같다. 탐방을 마치고 난 지금 운암의 생애와 사상에 대한 각자의 견해는. 염지현 : 지금도 운암 선생에 대해 말해보라고 하면 할 말이 그리 많지는 않다. 그래도 자료집을 토대로 사전에 인지하고, 탐방기간 중 배운 것들이 운암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 운암은 시대의 선구자였음에도 시대를 잘못 만나 비참한 종말을 맞은 분인 것 같다. 운암 선생 자녀들의 얼굴을 보면서 자손들의 고생과 운암 선생의 고단했던 삶의 역정이 그대로 묻어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항일 독입운동을 했고, 민족사랑의 기치를 높이 들었던 운암 선생의 삶과 사상은 반드시 재평가 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윤선아 : 운암 김성숙 선생님이 항일운동을 했던 사적지를 탐방하면서 대략 어떤 분이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는 있었다.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운암은 진보적인 민족주의자였던 것 같다. 운암이 평생 보여준 삶의 지향점은 용문사에서 출가하고 봉선사에서 스님으로 있던 시기에 불교공부를 하면서 생겼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그 때의 공부가 독립운동을 했던 선생님의 사상에 깔려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민족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는 운암 선생님의 말에도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중도사상이 배어 있다고 본다. 류지훈 : 운암 선생님에게서 가장 본 받을 만한 점은 격변하는 시대의 변화에 흔들림이 없었다는 것이다. 당시의 시대상황이 요즘의 사회상과 크게 다른 것 같지는 않다. 즉, 부당한 것을 알면서도 일본의 행동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현 시대에 운암 선생님의 사상이 꼭 필요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운암 선생님을 역사적으로 재조명함으로써 그 사상을 현재의 사회상에 투영해 보고 우리나라 모든 국민들에게 알려야겠다는 사명감이 생기고 있다. 탐방기간 중에 많은 독립운동 사적지가 사라져가는 모습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 류지훈 : 그 부분은 많은 학생들이 동감했던 부분이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역사의 현장임에도 불구하고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곳이 대부분이었고, 심지어 쓰레기로 뒤덮인 곳도 있었다. 우리 정부가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도록 무엇을 했는가 싶었다. 아무런 대책 없이 방치한 상태를 보면서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진했다. 그래서 그 아쉬움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기도 했다. 요즘 모 방송에서 문화재 찾기 프로그램을 선보이면서 국민들이 문화와 유적에 대한 관심이 과거와 달라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독립운동가들의 활동 근거지는 곧 우리 역사의 한 부분인데, 이러한 역사의 현장이 사라져 가는 모습을 이슈화 하거나 관심을 갖도록 하는 작업들이 필요한 실정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이라도 우리 정부가 정부 차원에서 중국과 협의를 통해 역사의 현장을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윤선아 : 한마디로 표현하면 안습(최근 젊은이들 사이에서 안구에 습기가 찬다고 하여 눈물이 난다는 뜻으로 쓰이는 말)이었다. 참담한 그 자체였다. 독립운동가들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조국의 광복을 위해 헌신했으나, 그분들의 피땀과 노력이 고스란히 스며 있는 현장은 처참한 모습으로 방치돼 있었다. 광복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전쟁을 겪고, 남과 북으로 갈라지고, 그것도 모자라 남쪽에서도 서로 생각을 달리해 의견대립과 다툼이 난무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결과일 것이다. 특히 조금이라도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를 지닌 분들은 그 공적에 관계없이 역사적 뒤안길로 잊혀져 갔던 것이 우리의 현실이었고, 운암 선생님도 그런분들 중 한 분이었다고 생각된다. 이제 우리는 2002년 월드컵을 치르면서 레드 콤플렉스를 극복했다고 본다. 이데올로기 때문에 그분들의 역사를 외면했던 과거의 잘못도 반성하고 그분들의 삶을 다시 기억해야 할 것이다. 정부차원에서 위원회를 설립하던가, 아니면 민간차원의 대표단을 구성해 그분들의 삶과 사상을 기리는 활동을 할 때라고 생각한다. 아직 100년도 안된 일 아닌가. 염지현 : 독립운동을 했던 선열들의 활동무대가 100년도 채 안 된 시점에서 공사장으로 변해버리는 동안 우리는 무엇을 했는지 슬픈 마음이 앞섰다. 무엇보다 충칭에서 폐허가 되어 있는 임시정부의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너무나 아팠다. 탐방단 지도교수께서 “그나마 사라지기 전에 역사의 현장을 볼 수 있다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 것 같다”말씀을 하실 때 더욱 안타까움을 느꼈다. 8박 9일 동안의 중국 내 항일독립운동 사적지 탐방은 끝났지만 숙제를 안고 왔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공사장으로 변해버린 우리의 항일유적지 옆에 번듯하게 잘 보존되어 있는 중국 유적이 있었던 모습에서는 비애감도 느껴야 했다. 이제 정부가 나서야 할 때다. 사라져 가는 역사의 현장 가운데 가장 마음에 남았던 곳이 있다면. 윤선아 : 쓰레기장으로 변한 독립운동가 및 가족들의 묘역과 충칭에서 임시정부 청사로 사용하던 오사야항이었다. 바로 그 옆에 고층빌딩이 올라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 같은 마음에 안타까웠다. 류지훈 : 정부에서 모르고 있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런데 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그대로 보고만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돈이 많은 드는 일이라서 그런가. 독립운동가들의 활동 무대를 살펴보고 베이징에서 그분들의 자손들을 만났다. 운암 선생과 김산 선생의 자손을 한 자리에서 만난 감회는. 류지훈 : 내 일생에서 다시 오기 어려운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이분들이 독립운동가들의 후손들이구나 하는 느낌뿐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들의 무관심 속에 그분들이 힘들어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평소 속으로만 생각하고 있던 것을 한국에서 온 젊은이들을 보면서 전달하고자 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관심 밖으로 밀려난 그분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그들이 무관심 속에 잊혀져 가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언론을 통해 보고 듣는 것이 아니라 직접 대면해 대화를 나누면서 피부에 와 닿았다. 윤선아 : 항일운동 사적지 탐방 중 쓰레기장으로 변해버린 독립운동가 묘역을 보았을때의 안쓰럽고 안타까운 마음과 똑같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가 세워질 수 있도록 노력한 분들의 후손인데, 심지어 아버지의 성을 쓰지도 못하고 있는 현실에 목이 메었다. 지금 우리사회에서는 친일파들이 내 땅을 내 놓으라고 강변하는 상황인데, 참으로 달랐다. 우리가 탐방을 가지 않았고 그분들을 그곳에서 만나지 못한채, 언론을 통해서만 접했다면 그냥 그렇게 살고 있는가 보다 하는 정도의 생각만 하고 말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정말 죄스럽기까지 했다. 염지현 : 주변에 일제강점기 때 외할아버지가 내무부 장관을 하는 등 친일행적이 뚜렷한 집안의 친구가 있다. 그 친구 집안은 지금도 정말 잘 살고 있다. 그런데, 이 나라의 독립을 위해 부인과 자식까지 버리고 항일운동을 한 분들의 후손들은 정부로부터도 제대로 예우를 받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게 우리사회의 현실이다. 그저 그 정상적이지 못한 상반된 현실에 화가 날 뿐이다. 북경대학교 정치관계학원(정치외교학과) 학생들과 토론을 하면서 과거 역사에 대한 동질감과 이질감을 느낄 수 있었는지. 류지훈 : 옆에서 나누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일본에 대한 감정에 있어서 부정적인 면이 많았다. 중국 학생들은 한국인을 대하는 것과는 달리 일본인들에게는 알게 모르게 거리감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사실 그 이상의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다. 윤선아 : 우리가 들고 있는 손수건에 탐방 지역의 지도가 그려져 있었는데 그것을 본 그들의 첫마디가 대만을 그려 넣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누구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그들은 대만을 자신들의 영토로 생각하고 있었다. 나름대로의 강한 역사의식을 느낄 수 있었다. 대만을 자기들의 땅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독도를 생각하는 우리들의 모습이 반추됐다. 염지현 : 또 북경대 학생들이 동북아시아의 통합을 위해 남북이 통일을 해야 한다고 말해 많이 놀랐다. 우리는 동북아시아의 통합을 생각하면서도 정작 한반도의 통일을 먼저 생각하지 못했었다. 역사와 현재의 정세를 판단하는 생각의 범주가 넓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운암 선생님의 사상을 재조명하는데 있어서 여러분들의 역할을 설정하고 있나. 류지훈 : 지금은 사이버 시대이기 때문에 인터넷 상에서 모임이 이뤄지고 있다. 탐방단 1기생들은 앞으로 각종 언론매체에 적극적으로 투고를 하거나, 기념사업회에서 주최하는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활동을 펼칠 것이다. 또 2기생들이 나오기 전까지 교두보 역할도 하게 될 것이다. 윤선아 : 무엇보다 우리들 스스로가 지금 갖고 있는 마음 그대로 독립운동가들의 업적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음 기수들을 위해 책이나 영상물 등 관련 사적지에 대한 자료집을 만드는 일도 추진해볼 만한 일이다. 염지현 : 우선 온라인 모임 활성화를 제안할 계획이다. 그리고 온라인을 통해 정기 모임을 갖고, 운암 기념사업회에서 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동참했으면 한다. 1기 탐방단이 관심을 갖고 활동한다면 자연스럽게 그 의미가 주변에 알려질 것이다. 정리=심정섭 기자sjs88@beopbo.com 법보신문 865호 [2006-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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