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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신문] “한국말로 인사 못해 정말 죄송합니다”
관리자
조회수 : 2678   |   2006-08-21

“한국말로 인사 못해 정말 죄송합니다”

태허스님 관련 중국 항일유적지 답사 下 ·끝


광복 61주년을 맞아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동국대 등 전국 30여개 대학 51명의 학생들은 독립운동가인 운암 김성숙으로 알려진 태허스님의 항일 유적지를 순례하기 위해 지난 7일부터 15일까지 중국 상하이(上海), 쑤저우(蘇州), 난징(南京), 우한(武漢), 광저우(廣州), 충칭(重慶), 베이징(北京) 등을 탐방했다.민족의 독립을 위해 숱한 좌절과 역경을 겪으면서도 독립과 해방을 염원했던 태허스님과 독립투사들의 발자취를 되짚어 보면서 그 열정과 조국애를 온 몸으로 느끼기 위해서다.


# 좌파 독립운동가 후손과 만나

님 웨일즈가 쓴 〈아리랑〉의 주인공인 김산(본명 장지락)은 정신적 스승으로 ‘금강산에서 온 붉은 승려’ 김충창(본명 김성숙)을 꼽는다. 1923년 봄 어느 날, 베이징대학에서 만난 김충창은 김산에게 ‘왜 조국이 식민지가 되어야 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독립운동을 해야 하는지’를 깊게 각인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운암 김성숙 항일운동 사적지 중국 탐방단’이 마지막 일정으로 찾은 베이징에서 〈아리랑〉의 두 주인공인 김산과 김충창의 후손들이 모였다. 김산의 아들 고영광씨(69), 김충창이 중국에서 결혼한 중국인 여성 두쥔후이(杜君慧)씨 사이에서 태어난 세 아들 가운데 둘째와 셋째 아들 두젠(杜建 71)씨와 두롄(杜鍊 61)씨, 한국인 친손자 김덕천씨(67) 등 네 명은 대학생 탐방단을 격려하기 위해 베이징의 한 호텔을 찾아 왔다. 이들이 한 자리에 모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들이 한국서 온 대학생들에게 던진 한 마디가 학생들의 가슴을 아프게 만들었다.

“한국말로 인사 못해 정말 죄송합니다.” 해방을 맞이했지만 남과 북 어디도 선택하지 않고 중국에 남아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았던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이 던진 첫 마디는 고국의 언어를 잊었다는 죄스러움이었다. 분단조국으로 해방을 맞이하지 않았다면 있을 수 없었던 일이기에 학생들의 마음은 더욱 무거웠다.

해방된 조국땅
남과 북 어디에도
맘 둘 수없어


항일투쟁보다
더한 시련에
쓸쓸히 눈감아






항일투사 김산의 아들 고영광씨(위사진 오른쪽서 두번째)와 김성숙의 아들 두롄, 두젠, 한국인 친손자 김덕천씨(오른쪽부터) 등이 지난 13일 베이징에서 만나 선친에 대한 추억과 독립운동가들이 한국에서 인정 받지 못하는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아래사진은 베이징대에서 중국학생들과 토론하고 있는 한중 대학생들

두젠씨는 “아버지가 귀국 후에 항일운동을 할 때만큼이나 어렵게 살아가셨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무거웠다”며 “항일운동을 위해 아버지가 중국을 떠돌아다니면서 많은 시련을 겪었지만 진정한 시련과 고난은 해방 이후 한국으로의 귀국 후였다”고 말했다.

아픈 과거를 털어 놓았지만, 강직하면서도 자상했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도 잊지 않았다. 9일간의 대장정 속에서 만났던 ‘항일 독립운동가 운암 김성숙 선생’에 대해 이야기에 학생들의 귀가 모아지는 순간이다. 두젠 씨는 열두 살 때인 1946년 운암 선생과 헤어졌기 때문에 어린시절의 일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열심히 일하는 분이었다. 매일 늦은 밤까지 일을 하셨고, 강직한 성격의 소유자였다”고 밝혔다. “그러나 힘든 생활에도 연날리기와 수영을 가르쳐 주셨으며, 힘든 상황에서도 낙천적으로 생각하는 방법을 알고 계셨다”고 술회했다.

“아버지가 스님이었다는 것을 아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중국으로 오기 전에 스님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며 아버지가 말해주었다고 말했다. 두젠 씨는 1990년 한국을 방문해 당시 아버지와 인연이 있던 스님들을 만나기도 했다고 밝혔다. 학생들의 뇌리에는 스님의 신분으로 3·1 독립운동에 참여하고, 옥고를 치루고, 베이징으로 유학 온 승려 출신 태허스님의 모습이 그려졌다.

인터뷰 내내 한국인 조카인 김덕천씨의 손을 놓지 않은 두젠 씨는 “아버지의 항일 운동 활동을 알기 위해 중국을 찾은 한국의 대학생들에게 뜨거운 동포애를 느낀다”며 “우리는 같은 피가 흐르고 있는 같은 동포”라고 말했다.

베이징=박기련 기자 krpark@ibulgyo.com


“국가중심주의 벗어나야 동북아 평화 온다”

# 한중 대학생 동북아 평화 논의

7일부터 시작된 ‘운암 김성숙 항일유적 탐방단’의 마지막 일정은 14일 베이징대학에서 개최한 한·중 대학생간 토론회로 끝맺었다.

‘동북아의 두 과제, 평화와 환경-한중청년의 역할을 중심으로’란 주제로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 정치외교학부 학생들과 가진 토론회에서 참가 학생들은 ‘상생과 협력을 바탕으로 한 평화 유지의 필요성’에 초점을 맞춰 토론을 이어갔다.

‘상생’을 이야기할 때 으레 등장하는 ‘평화’와 ‘협력’이란 단어가 이날만큼은 다르게 다가왔다. ‘민족우월주의’로 인해 20세기 초 식민지의 아픈 경험을 겪은 양국의 청년들에게 ‘국가간 상생과 공존’은 이미 관념어가 아니었다. 핍박받는 조국의 아픈 역사의 현장을 8일간의 대장정속에서 직접 두 눈으로 목격한 학생들에게 ‘자국의 이익을 위해 다른 나라의 이익을 훼손하는 일’이 얼마나 무모한 일이지를 알았기 때문이다. 

토론회에서 임동호 군(서울대 정치학과 3)은 ‘동북아 평화의 위협요소, 민족중심주의’라는 주제 발표에서 “20세기 이전에는 중국이, 20세기 이후에는 일본이 민족중심주의라는 이유로 동북아의 평화를 헤치고 큰 상처를 준 경험이 있다”며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발전을 위해서는 더 이상 민족중심주의적인 사고를 버려야 한다”고 밝혔다.

‘한반도 통일과 동북아시아의 협력’이란 주제 발제에서 부평윤(付鳳云 베이징대 국제정치학 석사과정) 군은 “국가중심주의가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전에 가장 큰 걸림돌이며, 특히 한반도의 분단 상황이 평화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면 이 지역에서 지속적인 평화와 안정을 찾기는 힘들다”고 지적했다.

왕쟝잉(王劍英 베이징대 국제정치계 3년) 군은 ‘동북아시아 번영의 허브-베이징, 평양, 서울, 도쿄’라는 주제 발제에서 “과거 중국, 한국, 일본은 지나친 국가 우선주의로 동북아시아 삼국의 평화를 헤쳤다”며 “이제는 동북아시아의 네 나라 중국, 일본, 북한, 한국이 지역적 통합을 모색해야 한다”고 제기했다. 이를 위해 “네 나라의 중요도시인 베이진, 평양, 서울, 도쿄가 경제 협력을 위해 보다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고재우 군(한양대 물리학과 1)은 “동북아의 번영을 위해서는 역사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통해 공동의 경제 발전과 안보 확립이 필요한 시기”라며 “모두의 발전을 위해 상호 이해와 교류 증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베이징=박기련 기자


님 웨일즈 기자가 쓴 독립운동가 김산의 삶

# 아리랑은 어떤 책

신문 기자였던 님 웨일즈가 쓴 〈아리랑〉은 독립운동가인 김산의 전기다. 님 웨일즈는 1937년 중국에서 ‘조선인 혁명가’ 김산을 20여 차례 만나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썼다. 김산의 전기인 셈이다. 1941년 미국 뉴욕에서 처음 발간됐으며 미국에서는 동양학 관련 교재로 쓰였다. 일본에서는 이와나미(岩波)문고가 선정한 ‘세계 명작 100선’에 포함돼 ‘참회의 필독서’로 읽히고 있다. 한국에서는 동녘 출판사에서 출간했다.


“중도파 정치행적 재조명 성과”

양병기 탐방단 단장



“기존의 독립운동사가 남한에서는 이승만, 김구 북한에서는 김일성, 박헌영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는데 반해, 이번 탐방은 해방정국 시기에 있어서 태허스님과 같이 중간파 정치세력의 정치행적을 다음 세대의 주인공인 대학생들이 현지답사를 통해 재조명할 수 있었던 점에서 큰 의미가 있었다.”

지난 7일부터 15일까지 8박 9일간 51명의 학생과 함께 상하이, 난징, 우한, 광저우, 충징, 베이징 등 중국 내 항일유적지를 답사한 ‘운암 김성숙 항일운동 사적지 중국 탐방단’ 양병기 단장(청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사진)은 탐방 결과에 대해 “독립운동사의 지평을 넓히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양 단장은 “태허스님과 관련된 유적지를 확인하는 것은 물론, 김원봉 등 일제하 해방 이후 주요 정치지도자의 사적지를 확인한 것이 무척 기억에 남는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 단장은 “학계와 정부가 일제하 독립운동가들 가운데 좌우 어디에도 포함되지 않는 소위 중간파의 연구 부진은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꼬집었다. 양 단장은 “국가와 민족이 위기에 처했을 때 자신의 생명을 받쳐 헌신한 분들에 대해서는 국가가 책임을 지는 사제를 견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기련 기자 krpark@ibulgyo.com


“유적지관리 정부서 지원을”

류지훈 탐방단 학생대표

류지훈

“현재 우리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는 우리의 근현대사에 대해 보다 더 상세하게 공부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탐방단 학생 대표인 류지훈 군(충남대학교 법학과 3·사진)은 “근현대사에 대한 인식 부족을 느낀 것이 큰 성과였다”며 “항일 유적지를 탐방하면서 태허스님의 업적을 자세하게 알게 된 것이 근현대사 이해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류 군은 “베이징에서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을 만난 것이 가장 기억에 남을 것”이라며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이 손을 맞잡으면서 조국을 위해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을 때 크게 감동받았다”고 말했다.

류 군은 항일 유적지에 대한 정부의 무관심에 대해서도 쓴 소리를 잊지 않았다. “흔적만 겨우 남아 있는 곳이 있는가 하면, 아예 발자취를 찾을 수 없었던 곳도 많았다”며 “왜 그렇게 무관심한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정부를 질타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홈페이지와 카페 모임 개설과 활성화 등 사이버 상의 모임과 함께, 독립유공자를 돕는 자원봉사 활동과 태허스님의 홍보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칠 계획”이라고 밝혔다.

류지훈 군은 2005년 3월부터 8월까지 이라크 자이툰 부대에서 복무했으며, 현재 복학을 준비 중이다.

[불교신문 2254호/2006년8월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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