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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오늘의 한국, 애국지사 피와 땀으로 일군 것 절감" - 운암 항일 탐방단
관리자
조회수 : 2534   |   2006-08-09
"오늘의 한국, 애국지사 피와 땀으로 일군 것 절감"-운암 항일 탐방단
【상하이=뉴시스】 "제1기 운암 김성숙 항일운동 사적지 中國탐방단"은 탐방 첫날인 7일 오후 중국 상하이에서 운암 김성숙 선생을 비롯한 독립 운동가들의 발자취를 되짚으며 그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기 위해 첫번째 방문지로 한인 독립 운동가들이 많이 묻힌 곳으로

【서울=뉴시스】

‘제1기 운암 김성숙 항일운동 사적지 中國탐방단’(이하 탐방단, 협찬 (주)현대코리아)은 탐방 첫 날인 지난 7일 중국 상하이(上海)를 방문, 운암 선생을 비롯한 독립 운동가들의 발자취를 되짚으며 그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렸다.

기념사업회에 따르면 상하이는 운암 선생이 1927년 광저우(廣州)에서 자신과 장지락(김산), 이육사 등이 참여한 ‘광동코뮨’이 실패하자 두군혜 여사의 집에 은신하다 결혼한 이듬해 이주, 정열적인 저술활동으로 벌어들인 원고료로 혁명가들을 도우며 1930년대 전반기까지 살았던 곳이라고.

김성숙은 당시 부인 두군혜 여사의 뛰어난 정치적 활동과 든든한 내조에 힘입어 <일본경제사론>, <통제경제론>, <산업합리화>, <중국학생운동>, <변증법전정> 등의 책을 번역했으며 진보적 문화인들의 조직인 문화총동맹·작가연맹에 가입하고 반제국주의동맹의 기관지인 <봉화>, <반일민족>의 편집위원으로도 활동하면서 저술가로 필명을 날렸다는 것.

이 무렵 김성숙은 20여권의 책을 펴낸 것으로 알려지지만 각기 다른 필명으로 출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전해지는 저술은 없다고 사업회는 안타까워 했다.

탐방단은 1932년 10월 한국독립당, 조선혁명단, 한국혁명당, 의열단, 한국광복군동지회 등 5개 단체 대표가 모여 통일전선체인 한국대일전선통일동맹의 결성을 협의했던 인민로 40호에 위치한 근검여사 터(당시 동방여사)와 1926년부터 1932년까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상하이에서 사용했던 마지막 임정청사를 둘러보았다.

또 한인 독립 운동가들이 많이 묻힌 곳으로 알려진 송경령능원(宋慶齡陵園, 만국공묘)에 참배하고, 윤봉길 의사의 의거지인 홍코우공원(현재 魯迅公園)도 방문해 윤 의사의 숭고한 뜻을 기렸다.

탐방단 강민경양(평택대.21)은 “교과서에서나 보던 항일운동의 현장을 직접 와 보고 많은 것을 깨달았다”며 “대한민국의 오늘이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애국지사들이 피와 땀을 흘렸는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편 탐방단은 상하이에서 1박한 뒤 탐방 이틀째인 지난 8일 아침 중국 IT산업발전의 전초기지로써 대운하와 정원의 도시인 쑤저우(蘇洲)로 이동하며 일정을 이어갔다.

쑤저우는 중국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도시 가운데 하나로 7세기 초 수양제에 의해 베이징(北京)에서 항저우(杭州)까지 연결하는 ‘경항대운하’가 건설되면서 활발한 교역이 이뤄져 중국 굴지의 상업도시로 성장한 곳이다.

특히 장계의 시로 유명한 한산사(寒山寺)를 방문한 탐방단은 스님 신분으로 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역임하신 태허스님(운암 김성숙)을 기리며 관심을 갖고 지도교수의 설명을 경청했다.

탐방단 대표 류지훈(충남대 법학과)군은 “스님 신분으로 독립운동에 나섰던 김성숙 선생의 고통이 한산사에 있는 장계의 시에서 느낄 수 잇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종민기자 kim9416@newsis.com
2006.8.9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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