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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신문] 운암 김성숙
관리자
조회수 : 59   |   2020-05-15


운암(雲巖) 김성숙(金星淑) 선생, 대부분의 한국인에게 생소한 인물이다. 선생은 왜적 치하에서 억울하고 해방 뒤에도 억울했다. 살아서도 억울하고 죽은 뒤에도 억울한 분들이 우리나라 대부분의 독립운동가들이지만, 운암 선생의 경우 특히 심한 편이다.

나라 망한 무렵에 태어나 식민지 백성으로 사는 것이 억울하여 용문사에 들어가 승려가 되고, 나라 되찾는 3·1혁명에 참여했다가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하고, 중국으로 건너가 신채호 등의 권유로 의열단에 가입하여 일제와 싸우면서 독립운동의 길을 걸었다. 25살에 망명하여 해방 때까지 22년 동안 의열단→광동꼬뮨→중국대학 교수→문필활동→조선민족해방동맹→조선민족혁명당→조선민족전선연맹→조선의용대→임시정부 국무위원 등을 역임하며 독립운동의 최전선에서 일제와 싸웠다.

인생의 황금기 청춘을 오롯이 항일투쟁에 바쳤다. 오로지 조국해방이라는 신념을 위하여. 파란만장→파란곡절→파란중첩→간난신고→풍찬노숙…선생의 생애, 더 이상 무슨 용어가 필요할까. 일제강점기는 왜적의 치하니까 망국노의 고초가 숙명이라고 치더라도, 해방 뒤 선생이 겪은 옥고와 빈한과 병고, 시련은 어떻게 설명이 가능할까. 파란만장→파란곡절→파란중첩→간난신고의 삶을 산 선생의 궤적을 찾아 떠나기로 한다.

◎ 교수신문 조재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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