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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일보] 좌파에 문호 개방... 좌우 아우른 통일 의정원 출범
관리자
조회수 : 380   |   2019-01-25


통일의회를 구성한 제34회 임시의정원 의원 일동(1942.10)


<40>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통일의회 성립

 

선거규정 개정 좌파 인사 참여 길 터 
보궐선거 통해 의원 23명 새로 선출 
34회 임시의정원 정기의회 개원 
홍진 압도적 지지로 의장으로 선출 
견제.타협으로 민주적 정당정치 실현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한국광복군을 중심으로 조선의용대를 받아들여 군사통일을 이룩한 뒤 곧바로 통일의회 구성에 나섰다. 독립운동세력의 통일은 으레 통일의회로부터 시작됐다. 수립 초기 각지의 임시정부를 통일하여 통합 임시정부를 발족하기 위해 추진한 것도 통일의회 구성 운동이었다. 
임시정부는 통일의회 구성을 통해 각지의 임시정부를 통일한 역사적 경험을 갖고 있었다. 상해 대한민국임시의정원과 재러 한인동포들이 조직한 대한국민의회로 통일의회를 구성해 통합 임시정부의 기반을 마련하고, 여기서 임시헌법을 개정하고 한성정부의 각료를 추인함으로써 통합 임시정부를 출범한 것이다. 

존폐의 위기에 빠졌을 때도 임시정부는 통일의회로 국민대표회의를 개최해 난관을 극복해 나가려고 하였다. 각 지방 대표와 각 단체 대표로 구성된 통일의회가 바로 국민대표회의이고, 여기에 임시정부의 운명을 맡기는 결단을 내린 것이다. 비록 개조파와 창조파로 갈려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민족독립의 대의를 위해 기득권의 포기도 마다 않는 자세를 보였다. 

이것이야말로 임시정부가 온갖 고난 속에서도 끈끈한 생명력을 갖고 존재가치를 발휘해온 힘의 원천이기도 했다. 항상 임시정부는 대한민국임시헌장 제2조의 정신, 즉 ‘임시정부는 임시의정원의 결의로 통치’한다는 의회중심주의를 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절체절명의 시기이자 민족독립을 쟁취할 호기를 맞이하여 임시정부는 독립운동세력의 통일을 모색했다. 전가의 보도처럼 다시 통일의회 구성을 추진한 것이다. 당시 독립운동세력은 크게는 좌우파로 분립했지만, 그 속에서도 다양한 이념적 스펙트럼을 가졌다. 우파 독립운동세력은 민족주의와 진보적 민족주의로 큰 편차 없이 삼균주의를 공감하고 있었다. 사실 그 토대 위에서 우파 독립운동세력은 한국독립당으로 통일을 이룬 것이다.

좌파 독립운동세력은 훨씬 복잡했다. 조선민족혁명당은 진보적 민족주의와 사회주의가 교집합을 이루는 형상이었다. 조선민족해방동맹은 사회주의에서 공산주의까지 다채로웠고, 조선혁명자연맹은 무정부주의 성향이 강했다. 이들을 임시정부로 끌어들여 한데 묶기 위해 우선 의회, 곧 임시의정원을 개편하기로 한 것이다.


임시정부는 좌파 독립운동세력이 임시의정원에 참여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 1942년 8월 ‘임시의정원 선거규정’을 개정하여 좌파 인사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길을 터놓았다. 한국독립당도 전당대표대회를 소집하여 임시의정원의 문호 개방에 찬성하고, 임시정부 주관 아래 각 선거구의 형편에 따라 보궐선거를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보궐선거는 1942년 10월 20일부터 23일까지 11개 선거구 가운데 9개 선거구에서 실시되어 새로 23명의 의원이 선출됐다. 그리하여 의원 수는 기존 의원 23명과 보선 의원 23명을 포함해 46명으로 늘어났다. 이들의 정당별 분포를 보면, 한국독립당은 김구·이시영·조소앙을 포함하여 26명, 조선민족혁명당은 김원봉·김상덕·문일민을 포함하여 16명, 조선민족해방동맹은 박건웅·김성숙 등 2명, 조선혁명자연맹은 유자명·유림 등 2명이었다. 

이렇게 좌파 인사들이 의원으로 당선되면서 임시의정원은 통일의회를 구성하게 됐다. 첫 통일의회는 좌우파 정당의 의원들이 모두 참석한 가운데 1942년 10월 25일 중경의 오사야항 제1호 임시정부청사에서 열렸다. 제34회 임시의정원 정기의회 개원식이자 통일의회 출범식이기도 했다. 

임시정부 주석 김구는 이날 축사에서, “우리 운동은 3·1운동 이래 많은 분열 상태로 오늘 이곳에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부르짖고 있는 통일문제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가 정성으로 임무를 다한 데에서 해결될 것입니다”라고 하여 좌우 독립운동세력의 단결을 강조했다. 

임시의정원 의원을 대표하여 조소앙도, “과거 무수한 방법의 대립이 이 의회로서 완전히 합일되었다. 과거 무수한 단체의 대립이 한국임시의정원으로 완전 통일되었다. 과거의 각 당파의 대립이 의정원으로부터 완전 통일되었다”고 주장했다. 곧 통일의회의 성립은 독립운동 방략은 물론 단체와 정파의 통일임을 강조한 것이다. 

임시의정원을 매개로 하는 좌우 독립운동세력의 통일의회 구성은 의회정치사에도 큰 획을 긋는 일이었다. 우선 임시의정원의 정당 분포가 다당제로 바뀌었다. 그동안 한국독립당 일당으로 구성되어 왔지만, 이제 조선민족혁명당을 비롯해 조선민족해방동맹과 조선혁명자연맹으로 다양화된 것이다.

김상덕 임시의정원 의원당선증(1941.10.13)

이와 함께 의회에 여당과 야당이 생겨나게 됐다. 임시정부와 표리관계를 이루며 여당 역할을 하던 한국독립당만이 아니라 조선민족혁명당을 비롯한 3개 야당이 견제와 타협으로 민주적 정당정치를 실현하게 된 것이다. 의장단 선거는 10월 26일 진행됐다. 홍진이 압도적인 지지로 통일의회의 의장으로 선출됐다. 홍진은 과거 국무령으로 민족유일당운동을 앞장서 추진하고 민족혁명당에도 참여한 적이 있었다. 좌우 진영을 아우르는 인물이었던 홍진은 이후 광복을 맞아 환국할 때까지 의장으로 활동했다. 

임시정부의 통일의회 구성은 좌우 독립운동세력의 임시의정원 참여에 국한되지 않았다. 이는 민족주의와 진보적 민족주의,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그리고 무정부주의에 이르는 다양한 이념을 가진 독립운동세력이 임시정부로 결집한 것이고, 향후 연합정부 출범의 기초를 마련한 것이다. 

사진=필자 제공

 

<김용달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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