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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숙 - 고은시인
관리자
조회수 : 272   |   2021-12-24

김 성 숙

                                                                                   -고 은-    

 

1959년 광화문 거리 노란 은행잎 널릴 때

나는 처음으로 김성숙 옹을 만났습니다

비각에서 견지동까지

화봉 유엽스님을 따라가서

조계사 밑 컴컴한 다방에서였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나도 한때 중이었지 중이 일하면 큰일 하는 법이지 하고

어디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나는 해인사에 있다고 했습니다

대머리에 굵은 안경테에 몸은 좀 불편한 듯했습니다

호두알 두 개가 손 안에서 달그락대었습니다

그러나 우렁우렁한 말소리로 말하고 고개를 이따금 끄덕였습니다

1898년 평북 철산고을 두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서

어릴 때부터 신학문과 여러 종교에 기울어지다가

이윽고 1916년 이래 중이 되어 만주와 국내 양주 봉선사와

금강산 등지에서 절공부를 익혔습니다

그러다가 혁명노선에 나서서 노동공제회에 가입 활약했습니다

다시 압록강을 건너 요하 건너 북경으로 가서

장건상 양명 김봉환 이낙구 장지락 등과

창일당을 조직하여 좌익투쟁노선을 이룩했습니다

이때의 동지 장지락이 님 웨일즈 ‘아리랑의 김산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나오는 ‘붉은 승려’ 김충창이

바로 김성숙이었습니다 운암스님이었습니다

김성숙으로 하여 장지락은 이데올로기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내가 알고 있는 사람 중에서

나에게 가장 큰 감화를 주었다

김산이 그리워하는 장면도 ‘아리랑에 나옵니다.

김성숙은 북경대학에 다니면서 고려 유학생회 회장이 되고

신채호의 추천으로 의열단에 가입합니다

광동으로 가서 중산대학 정치학을 공부해서

절실한 민족해방과 혁명의 이론을 전개하던 중

광동코뮌에 참가한 뒤 상해로 갑니다

그곳에서 재중국조선청년연맹을 조직하여

그들의 투쟁무대를 만주로 옮겼습니다

1931년 반제동맹을 창립하고 기관지 ‘봉화를 편집하고

중국인민군 19로군에 편입해서 상해전투에 나섭니다

그런 뒤 광서사범대 교수로 있다가

1936년 김규식의 조선민족해방동맹에 참가하여

민족해방을 발간하며 싸웠습니다

이때가 곧 ‘김충창 ‘김산

서로 혁명의 길을 달리한 때입니다

그는 지루한 중일전쟁 동안 조선민족전선연맹을 만들고

또 조선의용대를 결성했다가 중경의 임정으로 밀려갔습니다

김산은 만주로 잠입해서 당의 투쟁을 주도하다가

관동군의 일망타진으로 행방불명이 되고 말았습니다

해방 이후 김성숙은 임정 일행과 함께 추연히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그가 해본 일은 4.19 1961년 통사당 정치위원이었습니다

그나마 5.16 군사쿠데타에 의해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됩니다

평생 나라위해 싸운 늙은이를 감옥에 집어넣는 사람들이

이 나라 권력을 틀어쥐게 되다니하고

한 평 반짜리 마루방에서 햇볕도 없이 개탄했습니다

1968년 나는 제주도에서 돌아와서 종로2가 다방에서

그를 다시 만났습니다 중국집 잡탕밥을 얻어먹었습니다

나는 이 파란만장한 칠십 노인 앞에서 어서 하직하고 싶었습니다

다음 해 4월 그가 세상을 떠난 것도 나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소위 예술에 미쳐서 니나노에 빠져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병원에서 입원비 없는 환자로 처리되어 죽은 뒤에야

몇 사람이 가난한 주머니 털어 치료비 내고 시체를 찾아갔습니다

지금 그의 중국부인 두군혜 여사도 살아 있을 리 없고

그의 아들 두겸 두건 두련 3형제는 55세로부터  년 터울입니다

마땅할진대 혁명은 한 혁명가의 운명을 이렇게 성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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