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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이달의 독립운동가
관리자
조회수 : 1940   |   2016-02-03


1902년 유년시절 하와이로 이주하여 중학교를 마친 뒤 미 본토로 도항(渡航)하여 캘리포니아주에서 고등학교를 졸업 1950년 한가기업회사(韓家企業會社)를 설립하여 재미한인사업가로 성공하였다. 1919년 제 1차 세계대전의 전후처리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연합국들이 파리강화회의(巴里講和會議)를 개최하자 동 회의에 대표자를 파견하여 한국의 독립문제를 호소하였으며 같은 해에 중국상해에서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후원하기 위해 군자금을 모집하여 송금하기도 하였다. 1936년 분열된 북미지역 한인민족운동단체의 부흥을 위해 소집된 각 지방 대표자회의(代表者會議)에 참석하여 북미(北美)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를 재건하고 미주 한인사회의 부흥과 항일운동, 임시정부의 재정 후원을 도모하였다. 이때 대한인국민회의 면모를 일신하기 위해 추진된 대한인국민회 총회관 건축위원으로 선정되어 1938년 4월 총회관을 낙성하는데 헌신하였다. 또한 미주에서 애국단(愛國團)의 간부로 활동하던 중 1937년 7월 중일전쟁이 발발한 것을 기회로 항일무장투쟁을 강화하기 위하여 미주 등지에서 산재한 하와이 대한인국민회 등 6개 단체와 연합하여 한국광복진선(韓國光復陣線)을 결성하고 진강(鎭江)에 위치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외곽단체로서 활동하면서 8년간 적극적으로 임시정부를 후원하였다. 1939년 중국의 한인독립운동단체인 광복진선(光復陣線)과 민족전선(民族戰線)이 하나로 통합되고 중·일(中日)간의 전쟁이 고조되던 이듬해인 1940년 1월 북미 대한인국민회의 집행위원장으로 선임된 그는 임원들과 상의하여 대한인국민회 명의로 1940년 9월, 미주와 하와이 각단체 대표자들이 연석회의를 개최하여 시국대책을 강구할 것을 하와이 대한인국민회와 동지회(同志會)에 제의하였다. 이에 따라 1941년 4월 20일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미국내 각 한인단체 대표들이 모여 해외 한족대회(韓族大會)를 개최하자, 북미 대한인국민회 대표로 참석한 그는 동 대회 부의장(副議長)으로 선출되어 선언문과 해외한족대회결의안을 작성하는 한편 독립전선 통일문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봉대(奉戴)문제, 대미외교기관(對美外交機關)의 설치문제, 군사운동에 관한 문제, 미국 국방공작 후원문제, 연합기관설치문제, 독립금 수봉문제 등을 결의하였다. 이 결의에 따라 동년 8월 미주내 모든 단체들을 통합한 재미한족연합위원회(在美韓族聯合委員會)가 조직되고 로스엔젤레스에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집행부(執行部)가 설치되자, 집행부위원 및 위원장으로 선임되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후원과 외교 및 선전사업을 추진하였다. 또한 동년 12월 일본인과 동일시 취급되는 한국인의 신분을 보장받기 위해 뱃지 착용제를 실시하여 한인들의 생명을 보존케 하는데 일익을 담당하였다. 1943년 9월 이승만 계열의 동지회가 재미한족연합위원회를 탈퇴 1944년 6월 독자적으로 외교위원부를 설치하고 활동하자 재미한족연합위원회도 별도의 외교사무소(外交事務所)를 개설하고 외교사무를 전개하였다. 이와 같은 사태에 대해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동년 8월 외교위원부를 새롭게 개조할 것을 명령하자 그해 10월 로스엔젤레스에서 미국과 하와이의 17개 단체 중 동지회 계열의 4개 단체를 제외한 13개 한인단체가 대표회를 개최하였다. 이때 동 대회 의장으로 선출된 그는 개조된 주미외교위원부(駐美外交委員部)의 부위원장으로 선출되어 조국의 독립을 위한 외교활동 1945년 광복이 되자 그해 조국의 재건 후원을 목적으로 구성된 재미한족국내파견대표단(在美韓族國內派遣代表團)의 단장으로 선임되어 고국을 떠나온 지 42년만에 조국의 땅을 밟았으나 당시 해방정국의 혼란으로 인해 별다른 활동을 보이지 못하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이후 미국에서 예전부터 활동해 오던 흥사단(興士團)의 이사장으로 활동하는 등 조국의 독립과 재건을 위해 일평생 헌신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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