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보센터
  • 공지사항

공지사항

게시판 내용
7월의 독립운동가 최중호
관리자
조회수 : 1725   |   2014-06-27


2014년 7월 이달의 독립운동가

최중호(崔重鎬) 선생

(1891. 1. 20. ~ 1934. 3. 28.)

국가보훈처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최중호 선생을 7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

선생은 1891년 황해도 신천(信川) 출신으로 양산학교(황해도 안악 소재)를 다니면서 교장으로 재직하던 김구 선생의 가르침을 받아 민족의식을 키워갔다. 1911년 선생은 일제가 항일운동인사를 탄압하기 위해 조작한 소위 테라우치(寺內)총독 암살음모사건(소위 105인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렀다. 1914년 서울 경신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후진양성과 국권회복운동을 계속하다가 체포되어 다시 옥고를 치렀다.

선생은 다방면으로 독립운동을 모색하였다. 1919년 3ㆍ1운동 이후 상해로 망명하여 김구 선생의 주선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내무부 경무국에서 활동하였으며, 항일군사인재 양성을 위해 임시정부가 설립한 육군무관학교에서 수학하였다. 군자금 모집 및 외교활동을 위해 광동을 다녀왔으며, 박은식 선생과 함께 사민보(四民報) 발간에 참여하는 등 언론활동에도 종사하였다.

1924년 선생은 상해대한교민단 의사원에 선출되어 교민들의 생활보호를 위하여 노력하였다. 교민단에서 경영하는 상해 인성학교 교사 및 학감으로 재직하면서 인재양성에 주력하였다. 또한, 대한민국임시정부 경제후원회 등의 단체를 결성하여 어려움에 처한 한인 동포나 임시정부 지원에 발 벗고 나섰다.

1920년대 후반 선생은 독립운동 진영의 이념갈등을 해소하고자 한국유일당 상해촉성회에서 집행위원으로 활동하였다. 그러나 1929년 유일당촉성운동이 좌우세력의 인식 차이와 당시 중국의 국공분열의 영향을 받아 해체된 후 재상해한국독립운동자동맹의 위원 겸 조직부장으로 임명되었다. 1931년에는 독립운동자동맹 조직부장으로 활동하였다.

한편, 1932년 4월 윤봉길 의사의 홍구공원 의거 이후 일제의 추격이 심해지자 임시정부 요인 등 독립운동가들이 상해를 떠났다. 선생은 일경에 체포되어 당한 고문과 옥고생활로 얻은 폐병이 악화되어 상해를 떠나지 못하고 1934년 3월 28일 영면하였다. 1977년 정부는 선생을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하였다.



file0 File #1   |   최중호4.jpg
게시판 이전/다음글
이전글 6월의 독립운동가 백초월
다음글 8월의 독립운동가 베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