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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독립운동가 백초월
관리자
조회수 : 1997   |   2014-05-30


2014년 6월 이달의 독립운동가


백초월(白初月) 선생


(1878. 2. 17. ~ 1944. 6. 29.)


독립운동의 역량을 한마음으로 결집하다 ◈


가보훈처는 광복회,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백초월 선생을 6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 선생은 승려 신분으로 30대 초반에 큰스님의 반열에 오른 지식인이었다. 3.1운동 당시 민족대표로 활약한 한용운, 백용성이 일제에 체포되자 선생은 항일이념인 일심교 전파를 통해 불교 독립운동의 구심체가 되었다. 상해 임시정부와 독립군에게 조달할 군자금 모집 및 용산역 "대한독립만세" 격문 작성을 주도한 혐의로 체포되어 옥중 순국하였다.


선생은 1878년 경남 고성에서 부친 백하진과 모친 김해 김씨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수원 백씨 26세손으로 소년 시절인 1891년 지리산 영원사로 출가하였다. 해인사에서 경학과정을 마친 후 교종의 최고 단계인 대교사(大敎師) 법계를 받았다.


선생은 기독교와 천도교 등 여타 종교에서는 3.1운동에 적극 가담한데 반해 불교계가 무관심한 것을 개탄하면서 진관사를 비롯한 전국 사찰을 돌며 항일 이념인 일심교를 전파하였다. 특히, 배움의 과정에 있는 학인승려들의 독립의식을 고취시켰다. "번갯불 번쩍 할 때 바늘귀를 꿰어야 한다."며 독립운동에 좌고우면하지 말고 즉시 가담할 것을 종용하였다. 또한, 중앙학림(現 동국대)내 한국민단본부를 설치하여 상해 임시정부 및 독립군에게 제공할 자금을 모금하였다.


또한, 선생은 1919년 단군 건국일 기념 및 1920년 일본 3.1운동 1주기 만세운동을 주도하다 일제에 체포되었다. 악독한 고문으로 건강이 급격히 악화된 선생은 여러 차례 체포되었으나 미치광이 행세로 일제의 감시를 피해갔다. 이후 1920년 승려독립선언서와 의용승군제 추진을 통해 불교 독립운동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한편, 일제는 중일전쟁을 일으키며 만주 침략의 발판으로 삼고자 용산역을 군인 및 군수물자 보급기지로 활용했다. 이에 선생은 전쟁터로 끌려가는 청년들에게 민족의식을 심어주기 위해 만주행 군용열차에 "대한독립만세" 격문사건을 주도하였다. 이 사건으로 선생을 비롯한 일심회 회원 등 80여명도 체포,구금되었다. 선생은 출옥 후에도 군자금 모금 활동을 계속하다 또다시 체포되어 청주교도소에 투옥되었고, 1944년 6월 29일에 옥중 순국하였다.


이에 정부는 1990년 선생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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