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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독립운동가 지복영(池復榮)선생
관리자
조회수 : 1964   |   2012-05-01


 

국가보훈처는 광복회ㆍ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한국광복군에 입대하여 제3지대 초모위원 겸 비서로 활동한 지복영 선생을 5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

 선생은 1920년 4월 11일 서울에서 출생했다. 아버지는 지청천장군, 어머니는 윤용자였으며, 1924년 어머니를 따라 중국으로 갔다.

 아버지 지청천 장군은 1919년 3ㆍ1운동 이후 만주로 망명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 산하 서로군정서 및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사령관으로 항일투쟁에 앞장선 분이었다.

 선생은 어릴 적부터 아버지를 통해 민족의 독립을 위한 희생정신을 몸으로 익혔다.

1937년 중일전쟁 발발 후 중국 관내지역의 상황이 급박하게 진행되자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진강, 남경 장사, 광주, 유주, 기강을 거쳐 중경에 정착하기까지 먼 길을 이동해야했다.

 남경의 중국학교에서 수학하던 선생은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임시정부 가족들과 함께 한 피난길 중에도 피난학교에서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교사로 활동하였다.

1938년 11월 광서성 유주에 도착하자 한국광복진선 청년공작대를 조직하였다. 청년공작대원은 34명이었으며 이중 여성대원은 지복영 선생을 포함 11명이었다.

청년공작대는 주로 한국과 중국인들의 항일의식 고양을 위한 선전활동에 주력하였다. 중국인들에게 한국인의 항일정신과 기개를 선전하고 한국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바꾸는 것은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해나가기 위한 급선무였다.

 선전활동은 거리선전, 연예와 항일연극, 대규모 공연 등을 통해 이루어졌으며 이러한 활동은 한국광복군 창설의 밑거름이 되었다. 1940년 9월 17일 중경 가릉빈관에서 한국광복군총사령부 성립전례식이 거행되었다.

 선생은 오광심, 김정숙 등과 함께 여성광복군으로 참여하였고 총사령부에서 사무 및 선전사업을 담당하였다. 광복군 총사령부가 전방인 섬서성 서안으로 이동하게 되자 선생도 서안에서 오광심 선생 등과 함께 1년 반 동안 기관지 《광복》간행에 전념하였다.

이후, 모병 업무 강화를 위해 광복군 서안 제3지대가 편성되자 선생은 서안보다 더 전선에 가까운 안휘성 부양에서 광복군 초모 활동을 전개하는 등 대일항전의 최전선에서 활약하였다.

그러나 무리한 활동으로 건강이 악화되어 중경으로 돌아온 선생은 건강을 회복한 후 1943년부터 임시정부 외무부로 차출되어 중국방송을 이용해 한국인 학병들의 탈출을 권유하는 등 모병활동을 전개하였고 1945년 광복군 총사령부 편대 재편성 당시 소령이었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로를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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