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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독립운동가 홍원식(洪元植)선생
관리자
조회수 : 2076   |   2012-03-01


▲ 제암리 3.1운동 순국 기념탑 3월의 독립운동가 홍원식(洪元植)선생 (1877. 10. 13. ~ 1919. 4. 15.)

 

국가보훈처는 광복회ㆍ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경기도 발안에서 계몽운동과 만세시위를 주도한 후 일제의 제암리교회 만행으로 순국한 홍원식 선생을 3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

선생은 경기도 수원 향남면 제암리에서 출생하여 대한제국 서울시위대 제1대대 서소문병영에서 근무하다 1907년 군대해산 후 충남 등 각지에서 의병으로 활동했다.

1914년 고향으로 돌아온 선생은 안종후, 김성렬 등과 ‘구국동지회’를 결성하여 신교육운동 등 계몽운동을 전개했다.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의 독립선언서 발표와 함께 탑골공원에서 만세함성이 일어나 전국적으로 번져나갔다.

수원지역에서도 3월 26일 송산면 만세시위를 계기로 조직적인 대규모 연합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송산 만세운동에 이어 3월 31일 발안장터에서는 1,000여 시위군중이 홍원식 선생과 안종후, 김성렬, 이정근 등의 주도하에 일본인 상점 등을 상대로 거센 투석전을 벌였는데 이는 식민지 정책을 등에 업고 경제력을 장악해 가던 일본인을 대상으로 한 생존권 수호의 발로였다.

그러나, 이를 진압하기 위해 출동한 일제의 무자비한 발포와 진압으로 이정근이 현장에서 사망하는 등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4월 3일에는 발안과 연계한 우정ㆍ장안면의 연합만세운동이 대규모로 전개되자 이에 대한 일제의 거친 진압작전으로 발안만세시위 주동자를 제외한 대부분의 시위주동자들이 검거되었다.

이에, 육군보병 아리타 중위는 4월 13일 13명의 보병을 이끌고 발안에 도착하여 제암리 진압을 시작하였다.

4월 15일 아리타는 주민들에게 알릴 일이 있다고 하여 약 20여명을 제암리교회에 모이게 했다.

이때 홍원식 선생은 주민들과 함께 교회에 들어갔다. 아리타는 주민들을 교회안에 가둬놓고 출입문과 창문을 잠근 채 불을 지르고 집중 사격을 명령했다.

제암교회는 총성과 함께 불타오르며 시커먼 연기가 하늘을 덮었다.

당시 홍원식 선생은 주민 20여명과 함께 제암리교회에서 순국하였다.

뒤늦게 현장에 달려온 선생의 부인 김씨도 일본군의 총격에 희생되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활동하며 만세운동을 이끌었던 많은 이들과 함께 홍원식 선생 부부는 순국한 것이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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