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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신문] “이념 논리에 매몰돼 약산(김원봉의 호)을 모독 말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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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조회수 :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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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08
약산 김원봉 선생의 처조카인 박의영 목사가 7일 부산 수영구 자택에서 유년 시절 힘들었던 가정사와 의열단 결성 100주년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김성효 전문기자
- 독립운동사 핵심 인물인데도 - 월북 이유로 공적 안알려지고
오는 10일은 1919년 중국 만주에서 대표적인 무장 독립운동단체인 의열단이 결성된 지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에 맞춰 국제신문 취재진은 7일 의열단장이었던 약산(若山) 김원봉(1898~1958·사진) 선생의 처조카인 박의영(73) 목사를 만났다. 박 목사의 부산 수영구 자택에는 ‘독립유공자의 집’을 알리는 명패가 붙어 있었다.
박 목사가 안내한 방에는 아버지 박문희(1901~1950) 선생의 사진이 눈에 가장 잘 띄는 곳에 있었다. 그는 부산 출신의 여성 독립운동가이자 여성 의열단원인 박차정(1910~1944) 의사의 조카다. 박 의사의 첫째 오빠가 박문희 선생, 둘째 오빠가 박문호(1907~1934) 선생이다. 1910년 5월 8일 부산 동래 복천동에서 출생한 박 의사는 경남 밀양 출신으로 조선의열단을 이끈 약산 선생의 아내다. 박 의사는 동래일신여학교(현 동래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국내에서 항일운동을 주도하다가 일제에 의해 옥고를 겪었다. 이후 중국으로 망명해 1931년 김원봉과 결혼하고 이듬해 남편과 함께 ‘조선혁명간부학교’를 설립했으며 제1기 여자 교관으로 활약했다. 정부는 박 의사의 공적을 기려 1995년 광복 5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박 목사는 현재 박문희 박문호 박차정 의사 유족 대표다.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의 핵심 인물인 약산 김원봉 선생은 1948년 월북했다는 이유로 공적의 많은 부분은 국내에서 잘 알려지지 않았다. 지난 현충일에 문재인 대통령이 김원봉 선생을 언급하면서 서훈을 둘러싼 찬반 논란이 불거졌다. 북한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당시 김원봉 선생을 국군 창설과 한미동맹의 초석을 다진 인물로 평가했다.
김미희 기자 maha@kookje.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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