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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크뉴스] 임시정부 국무위원"태허스님,추모제"
관리자
조회수 : 3514   |   2006-03-24


坪?지내신 운암 김성숙 선생의 기념사업회에서 24일 조계사 극락전에서 37주기 추모제를 개최한다. 민성진 유일한 불교계 임시정부 국무위원 "태허스님" 우리나라 유일한 스님출신 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지낸 "태허스님(운암 김성숙) 37주기 추모제"가 24일 오후 2시 서울 견지동 조계사(주지 원담스님) 극락전에서 열린다. 이 자리에는 독립운동 기념사업회 등 관련단체 관계자들과 봉선사(주지 철안) 스님 등 불교계에서도 관심을 갖고 참석한다. 운암 김성숙 선생은 1898년 평안북도 철산군1898년 평안북도 철산군(鐵山郡) 서림면(西林面) 강암동(江岩洞)에서 출생하고, 고양군(高陽郡)으로 전적하였다. 태허스님은 1916~1918년 경기도 용문사 스님인 풍곡신원(楓谷信元)선사를 만나서 용문사에서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었고, 월초 노스님으로부터 받은 법명이 성숙(星淑)이며 운허스님과는 도반이다. 1918년 봉선사로 옮겨서 불교 교리를 공부했다. 당시 봉선사에 출입이 잦았던 손병희와 불교계인사인 김법린, 한용운 등과 친분이 있었고,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봉선사 스님들과 함께 부평리 일대에 시위운동을 주도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서대문 형무소에서 2년간 옥고를 치루었다. 특히 상해 임시정부 국무위원 시절 중국 항일 운동가인 두군혜 여사와 결혼 두감(음악가),두건(중국 미술협회이사),두련(중국 국가계획발전위원회 정보센터 부주임) 삼형제를 낳고 환국하였고,자식들은 주은래,강청 등 중국 공산당 간부들의 보살핌에 현재 중국 최고 고위층으로 있다. 운암 김성숙 선생은 해방 후 만년 야당 정치인으로 활동하시다 신민당 창당에 참여 지도위원을 역임하셨다. 말년에는 가난과 궁핍으로 말미암아 크게 고통 받았는데, 친지들의 주선으로 방 한 칸을 마련하고는 "피우정(避雨亭)"이라 이름하며 평생 검소한 생활을 하고 남을 위해 희생하시다 1969년 별세하셨다.1982년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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