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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매거진)대한불교 조계종 제25교구 본사,奉先寺
관리자
조회수 : 3715   |   2006-02-09


돈?奉先 寺" “오백년 범종소리 세상근심 씻어주는 곳”인재양성위해 홍법 강원, 역경불사에 총력 광릉 우거진 숲속에 관광명소로 자리매김 화엄·운허·월운 큰스님 등 중생구제에 힘써 대한불교 조계종 교종본찰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한마음 속에서 인과 연을 장만하여 하나의 결과 를 창조해 나간다는 마음의 3가지 작용 즉 인연법을 교리로 삼고 있 는 불교는 우리나라의 경우 고구려 때 전래돼 우리의 오랜 역사와 맥 을 같이 함으로써 민족종교로 자리매김했다. 삼국시대 이미 뿌리를 내린 불교는 고려조 때 국교로 번창일로였으 나 조선조에 들어와 숭유억불정책으로 쇠퇴하면서도 끈질긴 생명력으 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천만 불자를 포용하는 거대종교집단(수행도 량)으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이로써 한국 불교는 도처에서 대중 을 구제하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에 유서 깊은 봉선사(奉先寺)가 자리 잡고 있다. 봉선사는 크낙새와 수목원으로 널리 알려진 광릉 근처 전 나무 숲길을 따라 남동쪽으로 1.5km 거리에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는 고려시대 창건된 유서 깊 은 거찰로 오늘날 국내외적으로 널리 알려져 불교교육의 산실로, 관 광명소로 각광을 받고 있다. "전쟁의 참화로 7차례나 중건" 봉선사의 역사는 고려시대부터 시작된다. 원래 봉선사 자리에는 고 려 광종 20년(969년) 법인국사가 창건한 운악사가 있었는데, 여러 차 례 난리를 겪으며 폐허가 된 것을 1469년(조선왕조 8대 임금 예종 원 년) 정희왕후 윤씨(7대 세조의 왕비)가 세조의 영혼을 봉안코자 다 시 일으켜 세운 뒤 봉선사라 개칭하였다. 이후 봉선사는 임진왜란, 병자호란, 한국전쟁 등을 거치면서 소실과 중건을 7차례나 하였다. 당시 도량이 모두 불타는 아픔을 겪었지만, 법등을 이어온 유서 깊은 도량이다. 봉선사는 조선왕조의 원찰로 억불숭유시대에도 불향을 널리 펴왔다. 교종본찰로 널리 명성이 나있는 봉선사는 조선 중기에는 전국 사찰 을 감독하는 5 규정소로, 조선 말기에는 16개 중법산의 하나로 조선 불교의 중심도량 역할을 수행해 왔다. 화엄이 56년 범종각을, 1961~1963년에 운하당을 세우고, 1969년에는 주지 운허가 법당을 중건하고, 1977년에는 월운이 영각을 세웠다. 절 종각에 보존되어 있는 동종은 조선 전기의 것으로 보물 제397호 로 지정되어 있다. 이 같은 역사의 맥은 근세에도 계속되었다. 동국 대 전신인 명진학교의 초대 교장인 월초 큰스님께서 봉선사 주지로 봉직하면서 후학 양성을 위해 홍법강원을 설립하였다. 해방 후에는 운허 큰스님께서 광동학교와 동국역경원 설립에 앞장서 인재양성과 역경불사에 총력을 기울여 지난 2002년에는 역경불사 37 년 만에 대장경완역을 이루어냈다. 어른스님들의 이 같은 뜻은 운경 큰스님을 비롯해 월운 큰스님과 밀 운 큰스님, 성파 큰스님, 일면스님, 월암스님 등 많은 스님들께서 여 법하게 이어오고 있다. 현재 소임을 보고 있는 봉선사 대중들 또한 역대 큰스님들의 유지를 계승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수도권 1000만 시민을 위한 도량 으로, 또 남북통일시대를 대비한 중심도량으로 장엄하게 원력을 실천 하고 있다. "승려출신 최초 국무위원 운암 김성숙"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봉선사는 창건 이래 많은 인재와 저명한 인 사를 배출한 도량으로 유명하다. 현대에 들어와서도 숱한 명사가 봉 선사와 인연을 맺어왔지만 그 중에는 독립운동사와 정치사에 혁혁한 명성을 날린 운암 김성숙(蕓岩 金星淑 ; 1898~1969)선생과 문단의 문 호 춘원 이광수(春園 李光洙 ; 1892~?)선생을 손꼽을 수 있다. 김성숙 선생은 서기 1898년 평안북도 철산군 서림면 강암리에서 출생 하니 본명은 성암(星岩)이다. 성장하면서 한학을 공부하다가 1908 년, 대한독립학교에 입학하였으나 1910년 한일합방이 되면서 학교가 폐쇄되어 1914년까지 한학을 공부하였다. 1914년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잠시 귀국한 삼촌에게 독립군의 소식을 듣고 만주로 가기로 결심 원산에서 청진으로 가는 배를 타려 다 일본 헌병의 검문을 받아 우여곡절 끝에 인근의 어떤 절엘 갔더 니 때마침 4월 8일인지라 거기서 풍곡신원(楓鵠信元)스님을 만났는 데 스님은 당사 월초(月初)노스님의 제자로서 양평 용문사에 머물고 있는 터였다. 1922년 월초노스님은 그에게 태허(太虛)라는 당호를 지어 주었으나 승려생활보다는 무산자동맹(無産者同盟) 노동공제회(勞動共濟會) 등 을 조직하여 조국광복에 더욱 전력하였다. 1925년 일제의 감시를 피해 북경으로 가서 동지들과 창일당(創一黨) 을 조직하고 독립이론지 혁명(革命)을 발행하여 내외에 독립정신을 고취시켰고 고려학생회를 만들어 독립운동의 조직에도 힘썼다. 1942년 상해 임시정부에 참여하여 내무차관으로 선출되었고, 1943년 에는 그의 노력이 주효하여 민련과 광련이 극적으로 통합하였고 이 때 그는 국무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45년 조국이 해방되었으나 당시의 미묘한 정서 때문에 임시정부 요 인들은 개인의 자격으로만이 입국이 허용되는 수모를 겪었고 귀국 후 에도 부단히 죄익시하는 푸대접을 받으면서도 진보사회당(進步社會 黨)을 만들어 자유당의 독재와 공화당의 유신체제에 반대하는 운동 을 꾸준히 전개하다가 1969년 실의와 병고로 입적하니 나이 70세 승 려생활 10년이었다. 1982년 의열단단원으로서의 활동을 인정받아 건국공로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고, 천안 독립기념관 임정요인 귀국 상항도에 참여되었다. 이광수 선생은 서기 1892년 평안북도 정주군에서 출생하니 당사 운허 스님에게 6촌 형이 된다. 1902년 일찍이 일진회(一進會)의 후원으로 일본에 유학길을 떠나는 것을 시초로 하여 1950년 7월 12일 북한군에 게 납치되기까지 한국의 선구적인 시인, 소설가, 평론가, 언론인으로 서 계몽주의, 민족주의, 인도주의적인 시각에서 많은 작품을 남긴 문 호(文豪)이다. 그는 초년에는 기독교적인 인생관을 갔었으나 중년 이후부터는 원각 경을 즐기어 독송하면서 금강산 순례 중 보광암(普光庵)의 월하(月 河)노사의 영향을 받아 법화경(法華經)에 심취되면서 불교적인 생각 으로 바뀌었다. 그는 불교신행에 힘쓰는 한편 1946년 운허스님의 주 선으로 개교한 광동학교의 교편도 잡았고 또 교가도 지었는데 현재까 지 애용되고 있다. 1950년 6·25사변이 나자 서울 자택에 잠시 갔다가 북한군에게 납치 된 뒤로 소식을 모르는 터에 1975년 주요한(柱耀翰)선생을 비롯한 동 지들의 그와 연고가 깊은 당사에다 기념비를 세우면 좋겠다고 제의하 였는데 운허스님께서 허락하여서 그의 기념비가 당사 어귀에 서게 되 었다. "능엄학림, 큰스님 학인들 직접 가르쳐" 1994년 종단개혁은 기본교육 의무화와 교육기관 증설로 양과 질 면에 서 승가교육 수준을 격상시키는 성과를 가져왔다. 대표적 예가 전문 학림이 개설된 것이다. 은해사 승가대학원, 실상사 화엄학림처럼 봉 선사 능엄학림도 전문학림이다. 1996년 1월23일 종단으로부터 정식 인가받은 능엄학림은 “경전에 대 한 통달 없이 교리체득은 없다”는 취지하에 강독 위주의 옛 교수방 식을 강조하고, 세수 고희를 훌쩍 넘긴 학장 조실 큰스님이 후학을 직접 지도하는 것이 특징이자 자랑이다. 능엄학림은 한국불교의 종지와 종풍을 이어 전래의 교학을 연찬하 며, 이를 수행과 실천을 통해 계승, 발전시킬 역량을 갖춘 출가 수행 자로 전통교육의 강사를 배출하는 교육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학림 은 대한불교 조계종 교육법 제 78조에 명시하고 있는 전문교육기관으 로서 대한불교 조계종 교육원의 관장 하에 두며, 동 교육원의 지휘 와 감독을 받는다. 학림의 입학정원은 10인 내외로 하며 정원의 과반수를 넘지 않는 한 도 내에서 청강생을 둘 수 있다. 기본교육기관(중앙승가대학, 각 지 방승가대학, 동국대학교)을 이수한 자로 특히 한역경전을 모토로 해 독하고 논강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춘 자에 한해 지원을 할 수 있다. 수업연한은 2년(4학기)을 원칙으로 하며, 학기의 시작은 하안거 결제 일(음 4월 보름)로 한다. 또 수업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 7시 부터 시작해 매일 3시간 지속된다. 강당은 따로 없이 월운스님의 처소가 그대로 교실이다. 조실 큰스님 을 중심으로 12명의 학인스님들이 모여 <화엄경>을 읽는 것을 시작으 로, 알아보기 힘든 초서로 된 ‘사기’를 정서한 것을 돌아가며 각자 가 준비한 한 구절을 읽고 혹 틀린 글자나 잘못 이해한 부분이 없는 지 학장 스님에게 점검받는다. 사기란 선배 수행자들이 <화엄경>을 공부하며 요약해 나름의 주석을 단 ‘학습 메모장’으로, 선조들의 땀과 실력이 고스란히 배인 문헌 으로 우리나라에만 있다. 대부분의 사기는 초서로 필사돼 활자체에 익숙한 현 세대들은 알아보기조차 힘들어 <화엄경>과 <능엄경>의 사 기를 정리하는 데는 각각 1시간 30분이 할애된다. 사기는 두 가지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사기를 정리해 가면 선학 의 공부가 그대로 자기 공부로 육화된다. 사기는 다른 주석서에 기대 지 않고 원전만 집중적으로 파고든 결과물이자 여러 사람들이 쓴 다 양한 것이 남아 있기에, 이를 비교하다 보면 ‘원숙한 해답’에 접근 하는 성과도 얻는다. 개인과 개인, 세대와 세대를 잇는 사기 연구는 결국 불교학 연구의 귀중한 자료를 축적해 가는 과업이라 할 수 있 다. 낮 시간에 각자 공부한 내용은 저녁에 학인들끼리 논강을 하고, 논강 내용을 토대로 다음날 수업시간에 학인대표가 강주스님 앞에서 발표 하고, 강주스님과 학인 간에 질문과 토론을 한다. 수업 과목은 화엄 경 청량소초 80권 본(한역)을 기본으로 하며, 그 외 화엄학에 필요 한 연관 논서를 포함한다. 졸업 후에는 전통적인 방식에 따라 전강식을 하며 전강을 받은 자는 강사의 자격으로 각 지방승가대학의 강사로 활동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한다. 한편 능엄학림은 전문교육기관의 특성에 맞게 <화엄경>, <능엄경>, < 금강경>, <대승기신론>등 제방 강원에서 배우는 사교와 대교과목도 좀 더 심도 있게 공부한다. 강원교육이 초심자를 대상으로 한 주입식 이라면, 보다 복잡하고 난해한 소(경전에 관한 논서)를 주로 다루는 학풍이 능엄학림에는 조성되어 있다. "병술년 새해를 맞으며… 조실 월운 큰 스님" 병술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에는 인간에게 필수적인 경제가 잘 풀 려 생활고에서 벗어남은 물론 사상과 이념, 지역 간, 세대간, 계층 간의 해묵은 갈등과 반목은 과거 몇몇 분들이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 해 부추겼던 측면이 없지 않습니다. 2006년 새해에는 여야 노사 이 웃 간 자비의 마음으로 모두가 상생하는 지혜를 발휘해 빈부격차가 좁혀지는 안정된 사회를 이루고 환희에 찬 세계를 여는 한 해가 되기 를 바랍니다. 인간은 원래 각자가 우주의 창조자요, 세상의 주인인 까닭에 세상의 물정이 혼탁하면 그 책임은 마땅히 주인이 짊어져야 함은 불변의 원 칙입니다. 반유가 청미(淸美)함 또한 주인의 솜씨이니 올해에는 모 든 사람이 자정지덕(自淨之德)을 발휘하여 만인인 공수함락(拱手含 樂)하고, 제불(諸佛)이 환희공찬(歡喜共讚)하는 보람 있는 한해가 돼 야 할 것입니다. 일찍이 불교는 대오각성(大悟覺醒) 즉, 자기 마음을 깨달아야 한다 고 말했습니다. 깨달음이란 결국은 자기 마음이 모든 것을 만들어 낸 다는 법칙을 이해하고 나의 마음이 지옥을 만들기도 하고 정토(淨土) 를 만들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미혹(迷惑)에도 빠지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것을 뜻합니다. 부처님의 핵심사상은 중생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데 있습니다. 그럼에도 오늘날엔 중생구제가 여의치 않습니다. 산다는 것은 괴로운 (生卽苦) 것입니다. 참고 견디면서 살아야할 땅(忍土)이요 인내의 세 계(忍界)입니다. 그러나 사회일각에서 야기되는 조그만 고통이나 충 격에도 신분에 관계없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분 들이 있는데, 누구 에게나 시련과 고민은 백인백상(百人百想)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천상천하에서 나의 존재가 가장 소중하다는 탄생계(천 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를 설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자살이나 이혼 취업은 불교계가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데도 기인합니다. 불교도 이제는 개인 수행만 강조하며 은둔 할 것이 아니라 사회변화에 맞춰 목소리를 다듬어야 합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가까운데서 찾아야 합니다. 소홀하기 쉬 운 가족에게 그들이 바라고 원하는 것은 무엇이며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관심을 갖고 자비를 실천하면 그곳이 곳 극락이요, 자비가 고 갈 돼 가족 사회로 부터 외면당할 때 지옥인 것입니다. 선업을 많이 쌓읍시다. 미래는 반드시 행복해질 것입니다. 천 가지 만 가지 생각보다 한 가지 실행만 못하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좋은 계획을 세우고 각오를 하면 무엇 합니까. 금년에는 마음먹었던 일들 을 행동하고 실천하는 한해가 되기를 기원하면서 병술 새해엔 국운 이 융성하고 사회가 평안하고 가정마다 만복이 깃드는 한 해가 되기 를 삼보 전에 간절히 발원합니다. ■ 설산 철안 주지스님과 일문일답 ▲ 인과니 업보니 하는데 정말 있는 것입니까.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은 연기법(緣起法)입니다. 쉽게 말씀드려 ‘이 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기 때문에 이것이 있다’ 는 것으로 어떤 존재나 결과는 서로 연관되어 있음을 말합니다. 이 세상 모든 존재는 절대로 홀로 있는 것이 아니며, 남과 함께 있다는 부처님 가르침입니다. 또한 그 어떤 일도 원인 없는 결과는 없습니 다. 콩을 심으면 콩이 나는 것이고, 팥을 심으면 팥이 나는 것입니 다. 내가 남에게 선행을 베풀면 좋은 결과가 있는 것이고, 남에게 악 행을 하면 나쁜 결과를 받는 이치입니다. 이것이 바로 부처님 가르침 의 핵심인 연기법이고, 이것이 곧 인과(因果)이며 업보(業報)입니 다. ▲ 업장을 녹이는 방법은 있습니까. 업장(業障)을 녹이는 일은 바로 수행(修行)에 있습니다. 물론 처음부 터 수행이 잘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본인에게 맞는 기도 방법 을 찾아 이것을 잘 실천하면 수행을 할 수 있습니다. 사실 기도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스님들이 주로 하는 참선(參禪)이 가장 대표 적인 기도이며, 수행법입니다. 물론 요즘에는 일반인들도 많이 하고 있죠. 참선은 마음을 편안히 하고, 생각을 집중(나중에는 이마저도 자유로워 져야 합니다)하면 쓸데없는 망상이 없어지게 됩니다. 이 과 정에서 화두(話頭)를 들고 정진하기도 합니다. 또한 염불도 수행의 한 방법입니다. 나무아미타불 또는 나무관세음보살 등 불보살의 명호 를 외는 염불도 업장을 녹이는 수행방법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밖에 도 부처님 경전을 정성껏 옮겨 적는 사경(寫經)도 있고요, 부처님께 절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특히 절은 남을 원망하지 않는 하 심(下心)을 할 수 있어 좋습니다. ▲ 불자가 지켜야할 실천덕목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부처님은 재가불자들에게 오계(五戒)를 지킬 것을 당부했습니다. 일 상생활을 하면서 가장 기본적인 생활규범을 담고 있습니다. 다음과 같습니다. △살생하지 말라[不殺生] △도둑질 하지 말라[不偸盜] △ 그릇된 음행을 하지 말라[不邪淫] △거짓말을 하지 말라[不妄語] △ 술을 마시지 말라[不飮酒]. 저는 이와 더불어 자비(慈悲)를 실천하는 삶을 제안 드리고 싶습니 다. 자비는 중생의 괴로움에 대한 깊은 이해ㆍ동정ㆍ연민의 정을 나 타내는 말입니다. 흔히 부처님의 자비를 대자대비(大慈大悲)라고 하 는데, 이는 중생의 괴로움을 자신의 괴로움으로 여기고 중생을 구제 하는 부처님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불자들은 일상에서 어려움에 처 해 있는 이웃을 도와주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자비를 실천하 는 일입니다. ▲ 부처님께서 극락은 어디이며 어떻게 가는 거라고 하십니까. 아무런 고통도 없는 곳을 극락(極樂)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많은 분 들은 극락을 죽은 뒤에나 가는 곳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극락 은 반드시 죽은 뒤에만 가는 곳이 절대 아닙니다. 지금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자리가 극락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남을 배려하고 서로 돕고, 마음이 편한 곳 그곳이 바로 극락이 아니겠습니다. 때문에 극 락을 먼 곳에서 찾을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서로 다투고 갈등하 고 대립하는 삶을 산다면 그곳은 바로 지옥일 것입니다. ▲ 오늘날 한국사회가 끝없는 혼돈과 갈등으로 치닫는 근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 사회가 혼돈과 갈등이 극대화 되고 있는 것은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자기만의 주장이 옳다는 생각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물론 자기 주장과 생각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갖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세상 은 홀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나뿐만 아니라 남도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남을 인정하고, 그의 주장을 귀 담아 들을 때 혼돈과 갈등의 치유하는 첫걸음이 될 수 있습니다. 그 렇게 될 때 혼돈과 갈등을 치유할 수 있습니다. ▲ 행복한 가정을 만들려면 부처님의 어떤 가르침을 실천하면 좋을까 요.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요즘도 많은 집에서 가훈처럼 액자로 만들어 걸어놓고 있음을 봅니다. 집안이 편안해야 모든 일을 원만하게 이룰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행복한 가정 의 중요성을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도 많은 경전에서 가정의 소중함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가족을 부처 님으로 생각하면 됩니다. 부모님을 부처님 대하듯 공경하고, 자녀들 을 부처님 대하듯 보살핀다면 어찌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있지 않겠습 니까.? "김장 담가 나누니 기쁨 두배 행복 두배" 봉선사 주지스님과 대중스님들, 불자 100여 명이 배추 3000포기 김장 을 담가 김치와 쌀 250포대를 남양주, 구리 지역 소년소녀가장ㆍ독거 노인 500가구에 전달하는 등 이웃사랑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또한 지역을 위한 발심에서 봉선사 사찰문화재 보호와 이웃마을은 물론 광 릉수목원을 지키기 위한 방편으로 소방차를 직접 구입해 자위소방대 를 조직하는 등 이웃지킴이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취재 _ 정태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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