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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기다림 45년...이제야 아버지 땅에..
관리자
조회수 : 3719   |   2006-02-01


을 발취하였습니다.* (중앙일보)기다림 45년...이제야 아버지 땅에 독립운동가 金星淑씨 아들 來韓 님 웨일즈가 쓴 『아리랑』(Song of Arirang)을 보면 금강산승려출 신이라는 김충창이 나온다. 주인공 김산(본명 張志樂)이 자기의 사상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지목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 김충창이 독립운동가로 臨政국무위원이자 광복후 혁신계 정치인 으로 크게 활약했던 故 운암(雲巖) 金星淑씨라는 사실을 알고있는 사 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金星淑씨가 광복과 함 께 귀국하면서 중국땅에 杜君慧란 이름의 중국인 아내와 아들3형제 를 남겨두고 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더구나 드물다. 그 아들 3형제중 둘째인 杜鍵씨(57, 화가)가 지난 12일 서울에 왔 다. 한국미술협회가 주최하는 「中國朝鮮族作家展」에 작품을 냈다 가 개인적으로 족형뻘인 金瑞鳳 미협이사장의 초청을 받고 이루어진 한국 나들이다. 杜鍵씨는 北京중앙미술학원교수에다 중국미술가협회 이사직함까지 갖춘 중국에서는 꽤 실력을 인정받고있는 서양화가. 『다시 데리러 오겠다며 귀국한 아버지로 부터는 끝내 소식조차 없 었습니다. 우리에게 그후 45년은 아버지를 향한 안타까운 기다림과 원망의 세월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부친 金星淑씨가 臨政환국 제2진으로 고국에 돌아간뒤 어머니 杜君 慧여사는 자기姓인 杜씨를 붙여 개명한 鉗․鍵․鏈등 아들3형제를 데리고 上海로 나왔다가 中國공산당의 승리로 內戰이 마무리되던 49 년 다시 北京으로 이주했다. 어머니 杜여사는 廣東의 명망가에서 태어나 中山대학을 졸업하고 日本유학까지 마친 인텔리여성.金星淑씨와는 1920년대 후반에 처음만 나 국경을 넘는 뜨거운 사랑을 나누던 끝에 결혼했다. 2차대전 종전후 남편과 헤어진 뒤로는 이른바 「신생 해방중국」의 교육건설․여성운동의 전면에 나서 활약했고, 북경 2여중 ․북경6중 담임교장을 끝으로 60년대초부터 은퇴생활을 하다 76세되 던 지난 81년 지병인 천식으로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는 돌아가실때까지도 아버지의 별세소식을 모르셨어요. 소식없는 아버지를 내내 그리워하면서도 어머니에게서 단 한마디라도 아버지를 원망하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杜鍵씨가 한국에서 살고 있는 아버지의 본부인 소생 金淑女씨(74), 金鼎鳳(68)와 곡절 끝에 소식을 주고받기 시작한 것은 88년 여름부 터. 아버지가 어머니와 같은지병인 천식으로 고생하다 69년 4월 별세 했다는 이야기를 배다른 누님 淑女씨로부터 그때 처음 들었다. 서울에온뒤 坡州에 있는 묘소와 독립기념관등 아버지의 자취를 찾 아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는 杜鍵씨는 『사후에나마 그토록 그리던 아버지를 찾아온 아들의 모습을 보고 지하에 계신 어머니께선 얼마 나 기뻐하실까요』라며 흐르는 눈물을 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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