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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중국 현대음악의 대부 조선인 정율성을 한국인 눈으로 보다
관리자
조회수 : 3647   |   2005-12-28


?薩뮌菅? 해방군가’. 2000년 6월13일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 순안공항에서 북 한군 의장대를 사열할 때 연주된 ‘유격대행진곡’. 그리고 전주시 신흥고등학교 학생들이 부르는 교가. 중국-북한-남한 세 나라 세 노 래의 공통점은? 제4회 한국인기록문화상(지식산업사 주최) 대상작인 <음악이 나의 무 기다>는 사뭇 인상적인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서 ‘중국 현대음악의 대부’ 정율성이라고 답한다. 900매 분량(200자 원고지)의 이 저작 은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작가 이종한(43)씨가 오랫동안 흩어진 자료 를 모으고 생존자들의 증언을 따서 정리해낸 인간 정율성(1914~1976) 에 대한 회심작이다. 남쪽에서는 모양을 갖춘 첫 평전으로 내년 3월 께 출간될 예정이다. 조선 독립운동하다 19살 중국행 해방뒤 북한 군악대장 한국전때 중국 돌아가 음악가로 명망 한국인기록문화상 대상 2006년 출간 “중국 자료는 ‘소수민족 출신의 음악가’라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 어요. 한국인의 눈으로 본 조선인 정율성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정율성의 삶이 세 나라에 걸쳐 있는 만큼 세 나라의 입맛에 따라 편 리하게 부침시켜 인간 정율성은 박제돼 있었다는 게 작가 이씨의 설 명이다. 광주 생으로 열아홉 살에 중국으로 간 정율성이 중국공산당 근거지인 옌안으로 가서 항일가요인 ‘옌안송’과 ‘팔로군행진곡’ (나중에 중국인민해방군가로 개칭)을 작곡하며, 해방 뒤에는 북한에 서 조선인민군 군악대장을 지내고 한국전쟁 중 중국으로 돌아가 활동 하다 혁명열사릉에 묻힌 그의 역정이 세 나라의 아전인수가 가능케 했던 것. 지난 11월 11~12일 출생지인 광주에서 그를 기리는 음악제 가 열리는 등 남쪽에서도 조명을 받기 시작했으나 개괄적인 경력만 알려졌을 뿐이다. “자료를 조사하는 동안 회의에 빠지기도 했어요. 그런데, 그의 딸 이 틀어준 정율성의 육성노래 ‘매기의 추억’에서 우러나온 깊은 슬 픔과, 환갑을 훨씬 넘긴 노인이 10시간 넘게 그의 말년을 증언해 주 는 것을 보고 확신을 가지게 되었죠. 정율성이 큰 인물이었다는 것을 요.” 이씨는 인간 정율성을 복원하기 위해 유일한 혈육인 정쇼티, 말년을 가족처럼 지낸 리서, 중국행에 동행한 김승곤, 중국공산당 중앙당 은 퇴교수인 최용수, 당시 루쉰예술학원 학생이었던 멍위 등의 증언을 땄고, 김학철, 김성숙, 정정화, 님 웨일즈, 커란 등의 저서와 당시 발행된 중국신문 등을 참고했다. 그가 역점을 두어 밝혀낸 것은 대략 세 가지로 옌안행 이전 조선인 독립운동가 정율성 부분. 옌안으로 들어간 정율성이 조선인 독립단체인 조선민족해방동맹과 어 떤 식으로든 연계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편지를 찾아냈으며 그의 부 인 딩쉬에쑹의 회고록에서 정율성이 의열단 시절 유대진 외에 황청 해, 김중민이란 가명을 더 사용했음을 확인했다. 옌안행이 단순히 음 악공부를 위한 게 아니라는 추정이다. 또 혁명가·음악가 정율성 뒤 에는 위로 세 명의 형과 누나가 있었다는 새삼스런 사실. 형들은 모 두 독립운동에 투신했고 정율성에게 음악적 재능을 나눠준 누나는 혁 명가의 아내가 되었다. 정율성 집안이 알려진 것과는 달리 ‘빵빵’ 했음도 특기할 일이다. 부친 정대업이 교회에 낸 헌금을 확인한 결 과 5위권에 들 정도로 부유했다. 출신성분이 가난한 집안으로 바뀐 것은 정율성의 생존전략이었다고 이씨는 추정했다. 이씨는 부인 딩이 증언을 꺼린 점과, 북한에서의 활동상황을 확인하 지 못한 점을 아쉬워했다. “북한과 중국 공산당의 공식문서 등을 확인해 연구가 좀더 진척되 면 더 훌륭한 평전이 나올 수 있을 겁니다.”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 온라인미디어의 새로운 시작. 인터넷한겨레가 바꿔갑니다. >> ⓒ 한겨레(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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