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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나는 평화를 기원하지 않는다> 저자 인터뷰..
관리자
조회수 : 3723   |   2005-12-26


인터뷰) 쓴 국제분쟁 전문가 김재명씨 칸트도 ‘영구평화는 무덤 속에서나 가능할 것’이라고 했는데, 그렇 다면 차라리 평화를 기원하기보다 아득한 절망 속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소수자와 못 가진 자, 약자의 정의가 승리하기를 나는 간절 히 바라는 쪽을 택하겠다. 이 책은 그들이 탐욕스런 강자들과 벌이는 힘겨운 싸움에서 승리하기 를 바라는 나의 작은 지지의 표시이자 연대의 기록이다.” (지형 펴냄)에는‘국제분쟁 전문가 김재명의 전선 리포트’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김재명. 1952년생. 77년 박정희 정권 유신체제하에서 ‘운동’했다 는 이유로 긴급조치 9호에 걸려 약 2년간 ‘빵살이’를 하고 80년 봄 10년만에 대학(서울대 철학과) 졸업. , 과 통일문화연구소에서 기자생활하다가 국제 분쟁 전문가가 되기로 결심,96년에 뉴욕으로 가 시사사진 전문학교 ICP(International Center of Photography) 에서 2년간 사진 저널리 즘 공부. 99년 뉴욕시립대 입학. 국제관계학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국제정치학으로 박사학위과정 수료한 뒤 올해 초 귀국후 국민대에서 ‘1990년대 국제분쟁과 내전 강의 중. 그는 뉴욕대 재학중에 발칸과 중동지역만 각각 4번씩 찾아가는 등 8년 동안 세계 분쟁지역 12 곳을 돌아다녔다. 지난해 6월 숨지기 5개월 전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야세르 아 라파트를 두번째로 단독 인터뷰했고, 지난해 이스라엘군의 헬기 미사 일 공격으로 숨진 팔레스타인 무장저항조직 하마스의 지도자 셰이크 아메드 야신과 그의 사망 1개월 뒤 역시 꼭같은 공격에 희생당한 후 계자 압둘 아지즈 란티시도 만났다. 쿠바에서는 1951년 12월부터 체 게바라와 함께 8개월 동안 남미 5개 국 여행길에 올랐던 알베르토 그라나도(83)를 만났다. 영화 에서 게바라가 칠레 북부 광산지역에서 만난 노동운동가 출신 여인에게 외투와 돈(20달러)을 준 걸로 나오는 게 사실이냐는 질문에 그라나도는 망설임없이 “그렇다”고 대답했 다. 손목 자르기 테러전술로 악명높은 시에라리온의 혁명연합전선(RUF) 지도자 포데이 산코는 손목 자르라는 명령을 내린 적이 없다고 발뺌 했다. 이라크, 코소보, 카슈미르, 캄보디아, 동티모르, 쿠바 관타나 모에도 갔다. “분쟁지역 취재는 뉴욕시립대 3개월간의 여름방학 등 주로 방학을 이용하고 때로는 수업을 빼먹기도 했다.” 무엇이 그를 움직였을까. “80년대 초부터 분단극복이라는 민족적 과제에 몰두했다.친미 극우 나 친소 극좌가 아닌 제3의 길을 찾고 싶었다. 김성숙, 장건상, 원세훈, 김창숙 등 어느쪽으로부터도 환영받지 못 한 민족지도자들 얘기를 다룬 (2003. 선인 펴냄)은 그 결과물이었다. 뉴욕행은 그 문제의식을 국제무대로 넓힌, 외연의 확장이었다.책은 3 부로 나뉘어져 있다. "인간은 왜 전쟁을 하는가"와 "냉전 이후의 국제분쟁"을 담은 1부, 그리고 ‘테러와의 전쟁’및 "정의의 전쟁"론의 허구를 까발리고 자 살폭탄테러의 고통스런 내면세계를 추적한 3부는 내전 또는 국제전 에 관한 일반이론과 해설,전망을 다룬 전쟁·평화론이다. 2부가 세 계 분쟁지역 현장취재기다. ‘테러와의 전쟁’은 상대적이며 이데올로기적인 용어다, "80년대 민주화동력들 가운데 하나가 부천서 (권인숙양) 성고문사건 이었다. 그때 정권이 부천서사건이니 권양사건 정도로 용어를 선점했 더라면 아마 큰 동력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테러와의 전쟁도 부시쪽 이 선점한 용어다. 테러라는 게 19세기 서구 식민주의 침탈을 겪고 20세기에도 변형된 신식민주의 아래 고통당하면서 정규전을 치를 능력조차 갖지 못한 그 반대편 세력이 값싸게(1건에 150달러 정도?) 효과적으로 서방언론 을 타서 반전 비판여론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정치적 수단이라는 면 이 있는 것 아니냐? 강의 때 학생들에게 그런 사정도 포함해 깊이 생 각해보라고 말한다다.” 야신은 인터뷰 때 일제시대의 한국 독립운 동가들의 무력저항도 테러라 하느냐고 반문했다. “앞으로도 기회만 주어진다면 현장으로 달려갈 것이다.한국 기자사 회는 너무 조로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서구에선 백발이 성 성한 기자들이 현장을 누비는데.” 글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사진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 한겨레(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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