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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크뉴스) 젊은층 새로운 키워드,"혁신계 정치인(?)"
관리자
조회수 : 3712   |   2005-12-07


贊?임시정 부 청사 모형. - 브레이크 뉴스 2005. 11.12- 지난 8일 "뉴라이트(New Right)전국연합"이 출범되면서 각계 인사들 이 제각기 다른 생각을 가지고 대거 참여하여 축하의 뜻을 전했다.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과 사뭇 다르게 젊은층사이에서는 좌파성향의 독 립 운동가들에게 관심이 쏠리고 있다. 최근 언론을 통해 알려지기 시작한 유일한 승려출신의 임시정부 국무 위원을 역임한 혁신계 정치인 "운암 김성숙기념사업회"". (http://www.kimsungsuk.or.kr)가 젊은층의 지대한 관심사를 보이며 각종 포 털 검색순위 상위로 급상승 하고 있다. 젊은층이 많이 찾고 있는 포털사이트 "네이트(http://www.nate.com)"검색순위 에 "운암 김성숙"은 1.095위,열린우리당 1.957위,한나라당 2.059위,민주당 7.761위,민주노 동당 4.054위로 정치권 검색순위 1위에 랭크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최근 3.1절과 광복절을 맞아 여운형선생을 비롯한 좌 파성향의 독립운동가들이 새롭게 조명되며 국가 유공자 포상대상에 대 거 포함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운암 김성숙기념사업회"의 관계자는 이러한 반응에 한편 놀라워하면 서도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는 반응이다. 운암선생은 상해 임시정부의 국무위원을 지내시며 조국의 해방과 통 일,그리고 이승만 정권과 5.16군사정권에 반대한 두드러진 업적에 비 하여 정치적 노선으로 인하여 현실에서는 그다지 조명 받지 못했었 다. 국제분쟁 전문기자로 활동해온 김재명(뉴욕시립대 박사.국제정치)씨 가 쓴 "한국현대사의 비극­중간파의 이상과 좌절"은 청춘을 바쳐 조국 의 해방과 독립을 위해 싸웠으면서도 아무 것도 돌려받지 못한 채 스 러진 중간파 인물들의 삶을 추적한 연구서다. 내용은 이들이 모두 30년 안팎의 긴 세월 동안 풍찬노숙하며 항일투쟁 에 몸바친 인물들이며,이들은 또 한결같이 "극좌·극우의 편향성을 극 복하고 좌우합작과 남북협상을 통한 민족통일에 온 힘을 기울인 사람 들이었다"고 적고 있다. 또한 “이들은 친미적인 이승만 세력이나,그에게 빌붙은 친일파들의 극우 노선을 비판했고, 박헌영의 극좌 노선도 따르지 않았다. 그러나 극우파는 이들을 기회주의적 친공산주의자로 몰아붙였고,극좌파는 이 들을 회색적 기회주의자로 비판했다"고 서술한다. 특히 이 책에서""운암 김성숙선생(1898~1969)"은 기회주의적 면모를 느끼기는커녕,지나칠 정도로 강직한 성품을 지닌"지사"의 모습을 발견 하게 된다"며"운암 김성숙선생은 승려로서 3·1운동에 참여했다가 체 포돼 2년 간 옥살이를 하고 중국으로 건너가 약산 김원봉의 조선의열 단 등에서 급진 혁명가로 활약했다"고 소개했다. 운암 김성숙 선생은 민족진영 급진파로서 상해임시정부에 참여했으며 임시정부 내에서는 이승만의 반소.친미 노선을 강하게 비판했다. 해방 뒤 귀국한 그는 몽양 여운형과 함께 "근로인민당"을 결성해 좌우 합작에 나섰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분단과 전쟁 이후에도 혁신계 지도자로 활동했던 그는 집 한 칸 마련 하지 못한 채 가난과 병고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났다. 지은이는 협상과 대화로써 민족의 통일을 이루려 했던 이 중간파들 을 "민족 양심 세력"이라고 규정하며, 분단 극복이 최대 과제로 남아 있는 오늘의 우리에게 이들의 이상주의적인 통일 염원을 되새기는 일 은 여전히 소중하다고 강조한다. 기념사업회 엄선하 교육팀장은"조만간 뉴라이트(New Right) 전국연합 이 출범과 관련하여 사업회에서 성명서를 낼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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