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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임정 국무위원 김성숙 선생 기념사업 한국-중국
관리자
조회수 : 3040   |   2005-12-07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지낸 독립운동가 운암 김성숙(雲岩 金星 淑·1898∼1969) 선생을 기리는 기념사업회 설립이 한국과 중국에서 동시에 추진된다.

‘운암 김성숙 재단설립 추진위원회’( 간사 민성진)은 5월 운암 선 생의 기념사업회를 한국과 중국에서 동시에 출범시키기로 했다고 10 일 밝혔다.

한국측 사업회는 운암 선생의 외손자인 추진위원회 민 대표이사가 맡고, 중국측 사업회는 운암 선생이 중국인 부인 사이에 둔 세 아들인 두젠(杜健) 베이징대 교수,

음악가 두간(杜甘)씨, 두롄(杜連) 중국국 가발전개혁위원회 정보센터 부주임이 공동으로 맡기로 했다.


특히 중국 세형제중 막내인 두롄씨는 중국의 산업현대화 프로젝트의 핵심부서인 국가발전 및 개혁위원회 산하 정보센터 부주임을 맡고 있는

중국 내 최고위층 핵심 경제 관료로 국내기업들 사이에 관심의 대 상이다. 해외거주 한국인 2세로서는 세계를 통틀어 가장 영향력이 있는 인사 인 셈이다.

두젠씨 두간씨도 중국에서 저명한 문화예술계 인사로 아버 지의 나라인 한국과의 문화교류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


실무를 맡고있는 한국측 준비위위원회는 재단설립에는 어려움이 많다 는 판단아래 우선 사단법인 기념사업회로 출범할 계획이다.

오는 5월까지 관계부처에 등록을 마치고 6월부터는 중국측과 함께 본 격적인 사업 추진에 들어갈 방침이다.

재단으로 확대개편은 2006년 하반기로 목표를 잡고 있다. 중국측 준비위원 6명은 운암의 중국측 자손들과 세부협의를 하기위 해 오는 11일 중국을 방문한다.

이미 중국측에 그동안 국내에 알려지 지 않은 운암선생의 활동사료등을 요청한 상태이며 이번 방문시 그 일부를 한국에 갖고 올 계획이다.


특히 운암선생의 경우 1945년 환국해서 1969년 돌아가실 때까지 사상 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탄압을 받아

그의 독립운동 활동이나 사상에 대한 역사적 조명은 아직도 미흡하다.

특히 중국망명 이후 조선민족해방동맹을 결성하기전 광동인민폭동에 참가하고 중국 인사들과 활발한

문화 사상적 교류를 했던 행적등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어

한국측 요청에 따라 중국의 세 아들 을 비롯한 가족들이 찾아 나서고 있다.


준비위원회는 또 기념사업회 출범첫 사업으로 오는 6월 학술세미나 를 가질 계획이다.

그리고 한국에 운암테마파크를 중국에 기념공원을 조성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특히 주요 사업 중 다른 기념사업회나 재단에서 전혀 볼 수 없는 차 별화된 사업은 대 중국 사업이다.

한국에 있는 조선족동포를 포함한 재한국 중국인 지원사업이 주요사업으로 들어 있다.


한중 문화 교류 사업도 주요사업중 하나다. 중국에 있는 아들 3형제 의 생각이 사업에도 많이 반영됐다는게 민성진간사의 설명이다.

운암 김성숙 선생은 평북 철산 출생이며 승려출신으로 1919년에는 손 병희·한용운 등의 지도를 받고 3·1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일본경찰 에 체포되어

서대문감옥에서 2년간 옥고를 치렀다.


1923년 중국으로 망명하여 북경민국대학에서 정치학과 경제학을 공부 하는 한편 고려유학생회를 조직하여 그 회장으로 활동했으며

광동의 중산대학으로 옮겨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그는 당시 중국 공산당 지도부들과 친분이 두터워 광동인민폭동 (광동코뮌)에 가담하고

중국 문화총동맹과 작가연맹 등에 참여하기 도 했다.


1937년 중일전쟁이후 조선민족해방동맹 등 3개 단체를 통합하여 조선 민족전선연맹을 조직했고 1942년 민족전선연맹을 해체하고

임시정부 국무위원으로 취임했다. 해방후 국내로 들어와 1946년 민주주의민족전선 의장단의 일원이 되 었으나 좌우대립의 격화로 사퇴하고

여운형(呂運亨)과 함께 좌우합작 을 지지했다. 1955년 근로인민당재건사건과 진보당사건으로 탄압을 받았으며, 5· 16 이후에는 통일사회당사건으로

옥고를 치렀다. 1966년 재야통합야당인 신민당 창당에 참여하여 지도위원으로 활동했 다. 1983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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