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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보훈 신문) 임정요인 金星淑선생 국립묘지 안장
관리자
조회수 : 3006   |   2005-12-07


국립묘 지 안장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역임한 운암 김성숙선생 유해가 28일 오후 2시에 파주시 용미리 시립묘지에서 국립묘지 임시정부요인묘역으로 이전하 여 안장된다. 이 자리에는 황인환 서울지방 보훈청장, 김우전 광복회장 등 관련인사 및 유가족 등 100여명이 참석한다. 안장식은 고인에 대한 경례, 국가보훈처장과 광복회장의 추모사, 헌화·분향, 하관, 허토, 성분, 조총·묵념, 유족대표의 예사順으로 진행된 다. 김성숙 선생은 남양주군 봉선 사 승려로 있을 때 같은 승려인 이순재, 김석로, 강완수 등과 함께 1919년 3월 “파리강화회의에서 12개국이 독립국 이 될 것을 결정하였으므로 조선도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열심히 운동하면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내용의 격문 200매 를 만들어 뿌린 사건으로 1919년 9월 11일 일경에 체포되어 징역 6월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선생은 출옥후 국내에서 항일 민족운동을 전개하다 1923년 중국으로 건너가 조선의열단에 가맹하여 선전부장으로 활동하기도 하였으며, 1928년에는 재 중국조선청년총연맹을 조직하여 항일운동을 전개했다. 또한 1937년 조선민족해방동맹 을 조직하여 선전부장으로 활동하다 1942년 임시정부의 내무차장으로 임명되어 대열강 외교활동을 전개하였으며, 이 후 대한민국의 일체의 선전사업을 총괄하는 선전위원으로 임명되어 활동 하였다. 선생은 임시정부 국무위원으 로 활동하다 조국광복과 함께 중경의 임시정부를 철수하여 1945년 12월 신익희·조소앙등과 함께 서울로 들어왔 다. 광복후에는 혁신정당 을 조직하여 정치인으로 활동하다 1969년 별세하였으며,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8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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