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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 운암
[불교신문] 봉선사 출신 독립운동가 운암 선생 저서 확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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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조회수 : 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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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24
운암김성숙기념사업회 한중학술심포지움
1930년대 ‘일본경제사론’ 등 3권 발굴
경제사론(日本經濟史論)> <변증법전정(辨證法全程)> <중국학생운동(中國學生運動)> 등 3권이 실제로 출판된 사실을 공개했다. 알려진 <중국학생운동>은 1936년 <반식민지국가의 학생운동>으로 출간됐음을 확인했다. 저술 고찰 – 자료 발굴과 조사를 중심으로’란 주제발표를 통해 이같은 사실을 공개했다.
밝혀졌다”면서 “19세기 말부터 1992년 한중 수교 전(全) 중국에서 활동했던 한국인 가운데 중국어 텍스트를 통해 중국인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한국인”이라고 강조했다. 평했다. 중국 광시사범대학에서 1년간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다. 1934년 <중국농촌>의 ‘조선 농촌에서 일본 금융자본의 억압’, 1931년 <세계지식>의 ‘아시아 약소 민족의 윤곽 – 조선’, 1937년 <전지지식(戰地知識)>의 ‘항일전쟁과 동아시아 피압박민족’, 1939년 <구망일보(救亡日報)>의 ‘대적(對敵) 선전에서 필요한 것 (번역문)’ 등이 그것이다. 이로써 김성숙이 1930년대 중국에서 언론에 14편의 글을 발표했음이 확인됐다. 경력을 가진 독립운동가는 그리 흔하지 않다”면서 “개인적인 소망의 실현과 독립운동을 분리하지 않은 실용적인 성격의 소유자 였다”고 분석했다. 윤소영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연구위원은 김성숙이 1920년대 중반 중국 북경에서 발간한 <혁명>을 연구할 결과를 선보였다.
<혁명>을 분석한 윤소영 연구위원은 “<혁명>의 글이 모두 김성숙의 글은 아니겠지만 1925년에 작성된 논설류와 권두언 형식의 글은 김성숙의 글로 보아도 무방하다”고 주장했다. 1925년 3월에 나온 <혁명>의 글씨가 모두 같은 필체로 주인공이 김성숙으로 “피안(彼岸), 구두선(口頭禪) 같은 용어가 보여 불교의 영향도 엿보인다”고 지적했다. 한 지점은 민족사회주의(또는 사회주의적 민족주의)였다고 규정할 수 있다”면서 “민족사회주의는 자본주의도 아니고 마르크스- 레닌주의에 입각한 사회주도 아닌 지대에 존재하는 이념이었다”면서 “식민지기 탄생한 민족사회주의는 남한 현대사에서 민주사회 주의의 씨앗이 되었다”고 밝혔다. △김성숙 독립운동의 인적 네트워크(손염홍 건국대 교수) △해방 후 김성숙의 정치활동(오제연 성균관대 교수) 등의 논문도 발표 됐다. 의 실물을 소개한 성과 있는 심포지움이었다”면서 “해방 이후 운암의 정치활동까지 조명하여 독립운동을 관통한 운암선생의 사상 에 대해서도 새로운 접근을 시도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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